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일일투어
후쿠오카는 언제나 한결같다.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 길어야 2박 3일 일정이다. 하카타역을 중심으로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기고 쇼핑하고 늦은 저녁 온천욕하고 자는 일상 아닌 일상. 회사를 졸업하고 일정을 길게 잡을 수 있게 되면서 후쿠오카 근교 소도시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도심여행이 아닌 시골여행. 찾다 보니 후쿠오카 인근에는 보석 같은 곳들이 즐비하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뱃부, 유후인, 다자이후를 비롯해 쿠마몬의 구마모토, 산골짜기 온천마을 구로가와, 대자연 활화산을 볼 수 있는 아소산, 그 외에도 다케오, 우레시노, 후루유, 사가, 나가사키, 시모노세키 등 교통편만 해결된다면 모두 다 가고 싶은 곳들이다. 이번 여행은 3박 4일. 무엇부터 맛봐야 할지 두근두근 설렌다. 어디부터 시작하지?! 고민 아닌 고민.
뭐 하나 포기할 수 없어! 당일 패키지투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구로가와. 산속 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온천마을. 어찌나 콕 파묻혀 있는지 눈이 많이 오면 가 닿기 어려운 곳이다. 아이 없이 하는 혼자 여행이라지만 대중교통으로도 당일치기 여행은 쉽지 않다. 산골짜기 마을 뒷짐 지고 한 바퀴 걷는 건 성에 안 차고 목욕 마패 도장 찍기까진 아니어도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그다음으로 가고 싶은 곳은 화산연기가 온종일 피어오르는 활화산 아소산. 흔히 보아온 나무가 우거진 산이 아닌 화산활동으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산, 아직도 숨구멍으로 연기를 토해 내고 있는 산이 더없이 신비로울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런 소도시 여행은 육아와 출근으로 일정이 빠듯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콧바람만 흥! 하고 한번 쉬고 오는 당일치기 또는 1박 하는 짧은 여행이라 엄두도 못 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당일투어들이 하나씩 살아나고 있어 그 가운데 내가 원하는 곳 2곳을 한 번에 갈 수 있는 ‘구마모토성-아소산-구로가와’ 당일투어 상품이 있어 냉큼 예약했다. 다만 가이드 언어가 중국어인 것이 함정 아닌 함정. 중국어 가능자 우대도 아니고 중국인 전용 투어도 아닌데 뭐 어떤가 파파고가 있잖아! 그리고 가이드들은 웬만하면 영어가 통한다. 만약 안 되더라도 만국공통 바디랭기쥐가 있다. 안 되면 출발, 복귀 시간을 숫자로 써서 알려주고 알아들으면 그만이다.
외국인과 외국어에 둘러싸인 고요한 여행
뚜뚱 여행 당일이다. 여러 곳을 12시간 만에 둘러보고 오는 일정이니 아침 8시 일찌감치도 출발한다. 역시나 가이드는 영어를 잘했고, 역시나 나를 제외한 모든 탑승객들이 중국어를 하는 사람들이다. 매번 느끼지만 중국어를 쓴다고 모두 중국사람들이 아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다. 만석도 아니라 옆자리는 빈 채 편안하게 가게 되었고 차창 밖을 응시하던 나는 이내 잠들어버렸다. 쏼라쏼라~ 무슨 말인지 모르니 더 편안하다. 중국어가 성조가 있어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이드 언니의 목소리 톤은 나지막하니 안정감 있어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는 자장가다. 이른 아침 일어나 움직여 가뜩이나 비몽사몽이다. 언니의 목소리에 기대어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가이드 언니가 내게로 다가온다. ‘몇 분 후에 구마모토 성에 내릴 건데 거기에서 1시간 머무를 거야. 11시까지 돌아오는 거야, 알았지?’, ‘하이!’ 영어로 묻는 언니에게 일어로 ‘하이(네)'로 대답한다.
구마모토 성은 나고야, 오사카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 중 하나이며 특이한 경사와 견고함으로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벚꽃 명소(위키백과) 라고 하는데 역사를 알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겠지만 스미마셍 하게도 나는 일본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만 섬나라의 생경한 자연이 우리네와 달라 그 위대한 자연을 보러 매번 오게 된다. 성 맨 위에서 바라보는 도심 전경, 성터 주변에 있는 오래된 고목들 그리고 옛 것들을 소중히 다루고 역사를 귀히 여기는 그들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감명 깊다. 이것이 나에게는 배움이다.
노란 햇병아리 가이드님들
성곽을 둘러보다 노란 점퍼의 어르신들을 뵈었다. 어르신 중에서도 초어르신. 등이 곶곶히 펴진 어르신이 드물다. 모두 백발이 성성한, 내일 눈을 못 뜨셔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어르신들이 외국인 한 명을 에워싸고 있다. 내가 성에 입장할 때부터 이야기 중이시더니 한 바퀴 돌아 나올 때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은 모양이다. 보아하니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초보 가이드들이시고 베타랑 한 분이 그녀에게 파일첩을 내보이며 영어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을 다른 어르신들이 보고 계셨다. 선배 가이드가 하는 걸 후배 가이드들이 배우고 있다. 한마디로 OJT다. 백발이 성성하고 백 살이라고 해도 암요! 하고 믿을 정도로 연로하신 분들이 하나라도 더 배워 제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또르르 서서 열심히 설명을 듣는 모습을 보니 새삼 일본이 초고령사회인 것에 실감하고 그 보다 더 빨리 나이 들어가는 한국사회도 정년 없이 죽을 때까지 무언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다. 반면 어떤 일이든 늦은 나이란 없고 누워서 천장 바라보고 '오늘은 뭐 하지, 인생은 길고 지루한 일상이네.' 삶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보다 새로운 일,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 들어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 고된 일이라는 것을 부모님을 통해 뼈아프게 알고 있으니 나의 노년은 먹고살려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위해 내 노동력이 쓰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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