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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13. 2020

나는 그저 나로 살아가고 있을 뿐

"예민한 사람"이라고? 

 




걱정과 불안이 많고, 감정에 잘 휘둘리는 편이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할 때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를 좋아한다.

불이익이 있거나, 잘못된 상황을 봤을 때 안절부절못한다.

호불호가 지나칠 만큼 강한 편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답답하고 꽉 막히고, 피곤한 사람. 어쩌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몇 문장만 가지고 상상했을 때 그려지는 사람은 굉장히 재미없고 짜증 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건 나를 묘사한 문장들이다. 나라는 사람을 여기 이 몇 문장들로 완벽하게 정의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훨씬 더 복잡한 사람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 문장들은 나라는 사람을 표면적으로,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것들이다.


한겨울에도 정말 말 그대로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고집한다던가, 회를 먹을 때는 꼭 초장이 있어야 한다던가. 치킨을 먹을 때는 무를 꼭 2개 추가하고 거기에 매운 소스까지 추가해야 한다는 것. 맥주가 없다면 콜라던 사이다던 탄산은 꼭 있어야 한다는 것.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갓 배달된 음식들을 그대로 두고 5분 거리의 편의점에 다녀와서야 비로소 만족스럽게 식사를 시작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꼭 지키지 않으면 뭔가가 빠진 듯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들. 내게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라면 몇 시간이고 말할 수 있다.


늘 신경 쓰이는 일이 너무 많아 어렸을 때부터 두통을 달고 살았다. 학창 시절 주변에 수행평가 1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유난스러운 친구가 있었는가? 시험에서 딱 한 문제 틀린 것 때문에 세상이 떠나가라 서럽게 우는 친구가 있었는가? 그게 바로 나였다. 공부할 때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 집중하지 못했다. 독서실에 도착해서야 가지고 오지 않은 물건이 생각나 다시 집으로 가서 가지고 온 일도 몇 번 떠오른다.


그나마 이유가 있으면 다행이었다. 항상 쓰는 펜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만 해결하면 되었다. 하지만 간혹 아무런 이유가 없을 때도 있었다. 이유 없는 불안감은 나도 모르는 새 내 가슴에 훅 들어와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로 써 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난스러운데, 나에게 나는 그냥 나였다. 별로 특별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런 나로 살아가는 것은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매 순간 많은 에너지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데에 집중했지만, 결국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나도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의 이런 복잡한 성격을 '예민함'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 내린 후부터는 나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 ‘예민함’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예민하게 굴면서도 그 상황 자체가 싫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노력했지만 나는 그런 모든 순간의 내가 싫었고 모든 일들이 다 끝난 후에는 지난 일들을 되새김질하며 나를 자책했다. 나의 이런 예민함은 또 딱히 예민하지 않았던 순간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며 계속해서 과거의 모습을 후회하게끔 만들었다. 별 것도 아닌 실수들로 잠 못 드는 나날들이 많았다.


잠을 못 자고, 이유 없이 불안하고. 별 것도 아닌 것들 때문에 늘 안절부절못했던 나는 그렇게 자라 서른이 되었다. 서른 살 정도가 되면 큰 어른이고, 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서른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너무나 혼란스럽다. 나에 대한 확신은 무슨,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기만 하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왜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하지 못할까?
좀 덜 예민하면 살기 편할 텐데.”



사람들을 보면 늘 모두 나보다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저렇게 단순할까? 나와는 정 반대인 둔하고 무던한 사람을 보면 처음에는 괜한 우월감이 들었다. 작은 것들에도 신경 쓰고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내가 보기에 그 사람들은 ‘참 인생 편하게 산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기 때문에 시기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 머리만 대면 몇 초 안에 잠드는 사람들, 그저 걱정 없이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들. 사실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가끔은 너무나도 우울해지고, 정말 좁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도 참 많다. 이런 내 성격이 가끔은 나조차도 견디기 힘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그만 예민하고 싶다고.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게 그리 쉬운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보다는 조금씩 여유를 찾게 되었지만, 타고난 성향과 성장환경에서 받았던 영향이 합쳐져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이런 특성이 쉽게 바뀔 리가 없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김희철이 나온 적이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후배들에게, 예전에는 악플 같은 거 그냥 보지 말라고 쉽게 말했었다고. 왜냐하면 자신은 그게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몇 명의 후배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나도 신경 쓰지 않고 싶다


특정한 순간을 그냥 별 것 아닌 것처럼 넘길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예민한 사람을 그저 '예민함'으로만 정의 내린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하게 예민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게 무던한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각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다르다. 나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던한 부분들도 존재한다. 예민하던 무던하던, 혹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건 간에 모두들 그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나는 오늘도 그저 나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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