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의 <원숭이가 있는 열대 숲>과 김보희의 <THE DAYS>
원숭이가 되어 삶을 관조하다
벽면을 채운 스물일곱 개의 캔버스. 그 캔버스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자그마치 세로 4미터, 가로 14.2미터 규모의 작품인 김보희의 <THE DAYS>(2014)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초록의 열대 식물로 가득 채운 이 초대형 작품 속에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있다.
원숭이를 찾으려면, 깊은 제주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진종일 걸어야하기 때문에 동틀 무렵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멀리 바다를 뒤로 하고 야자수가 장승처럼 서 있는 숲의 어귀로 들어서면 시리도록 신선한 공기가 활짝 열린 피부 구멍으로 들어온다.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대낮의 햇살에 연녹색으로 투명해진 나뭇잎들이 생명력을 뽐낸다. 그 화려함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숲은 어두워지고 저 멀리 달이 떠오른다. 원숭이는 어둠이 깔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가 지나온 숲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 자세가 너무 다소곳해서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작가는 원숭이를 자신에 빗대어서 넣은 것이라고 말한다. “밤을 등지고 낮을 보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밤이 온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 하루지만 이게 인생일 수도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서울에서 대학교 교수로, 인정받는 동양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20여 년 전 제주도에 집을 짓고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는 작가의 관조적인 삶의 태도가 느껴진다. 자신을 원숭이로 그린 것은 원시림 안에 ‘인간’이 있으면 더 이상 낙원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 인간이 거주한다면, 탐욕과 이기심에 아름다운 원시림은 바야흐로 지옥이 될 것이다. 작가는 그림 속 원시의 낙원에서 무해한 원숭이로 지나온 삶을 평온히 회고하고 싶었다.
잔나비, 인간사를 연기(演技)하다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쇼쇼리 바람 불 때 뉘 한 잔 먹자할꼬 하물며 잔나비 휘파람 불 제 뉘우친들 엇더리”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조선시대의 시인 송강 정철이 지은 <장진주사>에서 잔나비(원숭이)는 죽은 사람의 무덤 앞에서 삶의 허망함을 상기시키는 휘파람을 불고 있다. 충분히 삶을 즐기지 못하고 무덤으로 온 인간을 비웃거나 안타까워하며 부는 잔나비의 휘파람! 호랑이도 토끼도 소도 그 휘파람을 대신 불지 못했을 것이다. 잔나비가 다른 동물에 비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사람을 닮은 영장류라서 인간사에 대해 뭔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알고 있는 듯한 원숭이는 앙리 루소의 열대 숲과 김보희의 제주 원시림에도 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처한 운명은 너무도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원시와 야생에 대한 욕망과 지향을 원숭이에 투영했다. 그들이 그린 원시와 야생은 누런 해 뜨고 흰 달이 지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아담과 이브가 추방당한 에덴동산이었다. 그 극락의 정원에서 한 마리 원숭이가 되어, 한 사람은 무심하게 낚시를 즐기고 한 사람은 평온하게 인생을 관조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낙원이 삶의 허망함을 상기시키는 것은 그 낙원이 그림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진주사> 속 잔나비의 휘파람소리가 귓전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