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재형의 <어머니>
양복 입는 아들이고 싶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막장까지 흘러들어 왔습니다.
찌든 석탄 때 묻은 작업복으로도
메마른 살갗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투명했을 속살은
겨울의 언 흙처럼 단단하고 거칠어졌습니다.
움푹 팬 주름 사이로 긴 한숨이 시립니다.
어떤 세상에 부딪친 것일까요?
곳곳이 시커먼 멍입니다.
어느새,
싸락눈이 내립니다.
제 막장에도 서릿발 녹는
봄이 오려나 봅니다.
황재형의 <어머니>는 불편한 작품이다. 헐벗은 겨울 산의 어느 산골 마을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침엽 교목은 검게 메말랐고, 인위적으로 나무를 자르고 흙을 파냈는지 능선의 경사면은 곳곳이 황토 빛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지붕 낮은 초라한 집들이 계곡을 따라 드문드문 있다. 밥 짓고, 물을 데우고, 방을 덥히는 사람들의 기척이 없다. 시간은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고, 싸락눈은 내리기 시작했다
막장으로 들어간 화가
황재형은 1983년 돌연 태백으로 내려가, 탄광촌과 지역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화폭에 담았다. 태백이라는 장소적 특수성과 황재형의 특별한 인생 이력 때문에 세인들은 그를 ‘광부 화가’, ‘탄광촌의 화가’, 군사 정권에 저항한 ‘민중 화가’로 부르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규정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가정용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석탄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다. 이때부터 강원도 탄광지역은 대부분 폐광되기 시작한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불과 7년 새 수백 개 탄광이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탄광촌을 떠난다.
신혼의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이끌고 제 발로 막장으로 들어가 광부가 되었던 화가는 폐광이 되어가는 태백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1993년에 시작한 대작 <백두대간>을 11년 만에 끝낸다. 그는 “우리 한반도 산하의 능선 줄기에서 뻗쳐 나오는 내재적 힘”(황재형)을 형상화하기 위해 백두대간 산줄기와 능선을 수없이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덧칠하여 <백두대간>을 완성한다.
노동자, 아들, 어머니의 역사
<어머니>는 <백두대간>을 완성한 이듬해인 2005년에 그린 작품이다. <백두대간>의 협곡 한 부분을 줌렌즈로 당겨 그린 듯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어머니’라는 제목 때문에 오래도록 당혹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제목과 그림이 주는 이미지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그림을 그릴 때처럼 여러 번 보고, 또 보며 겹겹이 쌓인 감정과 생각과 역사를 읽어내기 위해 분투했다.
물감에 흙을 섞어 그린 메마른 황톳빛 피부와 움푹 팬 주름, 석탄 물로 찍어낸 듯한 시커먼 멍. 나는 그림에서 아들인 화가의 얼굴도 보았고, 막장 같은 삶을 살아온 노동자의 얼굴도, ‘쥘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았다. 그 모든 사람을 낳고 길러낸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도 보았다. 검찰청 직원 출신으로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으로부터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말년 사업에 실패해 세상을 저버린 남편과 아버지에 반항하며 결사적으로 그림을 배웠지만 광부에 투신한 아들을 지켜봤을 황재형의 어머니도 보았다.
막장에 내리는 눈
그들의 고단한 역사 위로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다. 산등성이부터 싸락눈이 점점이 내리고 있다. 깊은 골짜기만 남겨두고 곳곳이 녹은 것으로 보아, 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지붕 낮은 집에 웅크리고 있을 사람들도 이제는 밥을 짓고 마당을 쓸 것이다. 그들의 막장에도 서릿발 녹는 봄이 오려는 것 같다. 백두대간의 ‘능선 줄기에서 뻗쳐 나오는 내재적 힘’은 대지의 생명력,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이름 없는 민초들의 생명력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