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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May 08. 2023

봄인데, 내 마음은 동면중이거나 비가 오거나

-대박이가 없는 일상을 견딘다는 것-

이 아이가 겨울 한강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듯이.

나 또한 무념의 상태가 되었다.

낮엔 지인이 아직 파양은 아니나, 아는 지인의 딸아이가 맡겨둔 시베리아허스키 레드 여아를 돌보기 힘들어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키워보지 않겠냐고...... 보러 가려고 약속을 잡았더랬다.


벌써 대박이가 간지 한 달도 안 되어, 다른 아이를 들여도 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건 대박이인데, 그 아이에게 못다 전해준 사랑인데.


그 생각이 들자 또 눈물 바람이다.


어쩌다 한강을 나가면, 동네 아이들을 만난다. 한 번씩은 대박이를 보았던 사람도 있고, 몰라도 풍문으로 들었던 이도 있는.

14년 된 포메는 걷는 모습이 발레리나 같아서 물어보았더니, 치매가 왔고, 귀가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인다고 하더라. 대박이를 알고 있는 견주였고, 같은 병원을 이용하는. 그런데 과연 대박이가 눈도 안 보이는 상태로 팔다리만 건강해서 걷고 먹고 하면 아이는 행복했을까? 나라면 그 삶을 견뎠을까?


언니의 말로는 중금속 오염이 심한 서울에서 맨날 냄새를 킁킁 맡고 다니니, 생각 보다 일찍 뇌가 망가진 거라는 진단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또 들이려는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한다.

'내가 계속 잠만 자.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해'


아이가 가고 계속 이틀마다 맥주만 마시는 듯하다.

가슴이 조여올 때면 그나마 맥주를 마시는 게 낫다. 일도 되어가는 데로. 계속 잔다.

할 수 있다면 계속 자고 싶다. 깨이고 싶지 않다.


무지개다리 건너고 나서 아내가   내내 울어서   없이,  아이를 들였다는 동네 아저씨의 말도 지금은 이해가 간다.  무지개다리가 뭔지도 몰랐는데, 아주 어렸을  바둑이가 죽었을 때처럼, 어른이 되어도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아들의 확답을 얻는다는  이젠 내가 먼저  수도 있어서, 만일 내가 먼저 가더라도 아이를 버리지 말고, 네가 키워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조건은 젊은 20 남자 아이가 감당할  있는 조건인가?


생각을 해 보자. 조금만. 조금만 더.

한 아이를 들인다는 건 한 인생을 책임진다는 이야기다. 사람과 수명의 길이 차이만 조금 있을 뿐.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아픔 모두를 책임지는 일이다.


사람은 아니지만, 49일이 지나면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달력에 표시해 놓은 6월 2일.


보호소 사이트도 많이 들어가 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버려진다. 끔찍하다.

제주에서 버려진 낳은지 얼마 안된 검은 진도 같은 경우도, 사람이 어쩌면 생명에 대해서 저렇게까지 잔인할  있을까를 생각했다. 사람처럼 살아 있는 아이들을 마구 버리고, 나이 들었다고 버리고, 아프다고 버리고.

최소한의 주인으로서 책임 의식도 없이 마구마구 입양하고 마구마구 버리는.

그런 단체들은 또 이런저런 핑계로 개장사를 하고 있는 곳도 많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함부로 생명을 들이면  된다. 지금도 나는 아마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정신을 추스르고 생각을 많이  다음에 그때 생각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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