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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와 연탄가스

기억 저편에 남겨진 이야기들

by 김사임


"춘자가 연탄가스 먹었데!!"

고 3 시절
합숙하던 학교에서 주말에 집에 갔다가 월요일 아침에 등교해 보니 교실이 소란스러웠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던 춘자가 주말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모두들 걱정하며 춘자 소식을 궁금해했다.

춘자는 우리 반 대입 합숙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주중에 5일을 함께 지내는 사이었다.


주중에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에 눅눅한 자취방에 연탄을 피우다가 사고가 난 것 같았다.

춘자는 우리 반에서 성적이 서열 2.3위를 다투는 실력파였다. 하지만 춘자를 부러워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춘자는 화려한 이름과는 다르게 "성적과 매력은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머리는 더플거리고 까만 피부에 말도 느릿느릿 어리숙하기 그지없었다.

하얀 교복 칼라는 늘 틀어져 있거나 똑딱단추가 풀려 있었고, 머리를 잘 안 감는지 가까이 가면 냄새가 났다. 외모에 민감한 여고 시절이었으니 복장 상태가 불량한 춘자랑 어울리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춘자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오로지 교과서만 붙들고 팠다.
춘자를 이겨보려 해도 항상 내 한발 앞에서 얼쩡거리니 은근히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에 춘자랑 친하지 않았지만, 막상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다음 소식이었다.

"국어 쌤이 춘자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셨데!"


누군가 얘기하자 교실은 또 한 번 술렁였다.

춘자가 연탄가스를 마시자 자취방에서 학교로 연락을 했고, 마침 국어 선생님이 그날 당직이셨던 모양이다.

국어 선생님은 당시 총각 선생님으로 여학생들에게 최고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던 분이었다.
단발머리에 키가 크고 비율이 좋고 운동도 잘하시고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었다. 가끔 국어 시간에 시를 낭독하시면 그 매력에 여학생들 가슴이 콩닥콩닥거리고 얼마나 흠모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말 한마디 하기도 떨리는 국어 선생님께 여학생의 상큼함과는 거리가 먼 춘자가 선생님 등에 업혀서 병원에 갔다니...

춘자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왠지 위생 상태가 안 좋은 춘자를 대신해, 왜 내가 창피한 생각이 드는 건지.. 또 한편으론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 춘자는 담날 학교에 나왔다.
핼쓱하고 누렇게 뜬 피부 기운이 없어 보이던 춘자, 평소와 다르게 모두들 춘자에게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다.

"춘자야, 괜찮냐?"

하지만 위로의 말은 이 한마디로 끝났다.

곧이어 관심은 딴 곳에 있었던 아이들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야, 너 국어 쌤한테 업혀갔다면서?"
"와! 기분 어땠냐?"

"춘자 너 복도 많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차라리 내가 연탄가스 마실걸
국어 선생님 등에 업힐수만 있다면...'
이런 철딱서니 없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호들갑 떠는 아이들에게 춘자의 한마디는 찬물을 확 끼얹었다.


"나는 그런 거 몰라!"


멍한 표정으로 관심 없다는 춘자에게 '아이, 이 가시나 앙큼 떠는 거 봐라! ' 오해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우린 참 철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춘자가 그런 일이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아 기말고사를 앞둔 주말이었다. 출제 비중이 높은 문제지를 개봉한다기에 친구 자취방을 처음 방문했다. 엄격한 아버지께 친구들이 허락을 받아서 힘들게 얻은 기회였다. 애들과 문제를 풀다가 출출해서 주인댁 떫은 감을 따먹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었다.

머리골이 흔들리는 고통과 전봇대가 여러개로 보인다는 뜻이 뭔지 알 거 같은 고통이었다.
세 명 중 문 가까이 잤던 내가 제일 심했다.
물론 춘자처럼 국어 선생님 등에 업히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원해도 시원찮을 상황이었지만, 가혹하게도 시험기간이어서, 등교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시험지를 앞에 두고 두통이 심해서 한 글자도 읽기가 어려웠다. 문제도 안 보고 답안지에 끄적였으니 결국 그날 시험은 망치고 말았다.

힘든 후유증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 고통을 겪으면서 "인물과 남자복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춘자에게 '호강했다"는 말은 저 멀리 천리밖으로 달아났다. 춘자에게 오해한 일이 미안한 생각이 들고, 아픈 내색도 않고 담담하던 춘자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배우가 업어준데도 손사래를 칠 정도로 연탄가스 중독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힘든 고통이었다.

물론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르지,
영화배우 정해인에게 업힐 수 있다면...
(아! 이런.. 아직도 철들지 않았다니.ㅋㅋ)




만추의 정취가 무르익어 가고 기말고사를 앞둔 이즈음의 일이었던 거 같다.


춘자는 가정형편 때문에 결국 대학 진학은 하지 못했다.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보던 그 아이. 졸업 후 모임에서도 춘자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사춘기 시절,

단순히 위생상태를 이유로 멀리했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춘자의 성실함과 순수함. 인내심을 이제는 생각하게 된다.


교과서와 한 몸이 되어 열공하던 춘자!

지금은 어디에서 그 무엇을 향해, 그 집요한 열정을 쏟고 있을까?

춘자 소식이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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