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은 사랑이다.
찬서리에 떨고 있는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그 상실감의 허기를 채우려 우리는 어쩌면 맛있는 음식을 찾는지도 모른다고...
곧 김장철이 다가온다.
그 본격적인 김장을 하기 전, 엄마가 늘 먼저 담그시던 김치가 있었다.
서리 맞은 마지막 풋고추와 동치미 무로 담근 풋김치였다.
보통 김치는 빨간 고춧가루로 버무리지만, 이 김치는 무와 무청을 손 가는 대로 슥슥 썰어, 보리밥과 풋고추를 확독에 드글드글 갈아서 담근다.
고추 입자가 보이게 대충 갈아야 맛이 나는 특징 때문에 믹서기는 금물이다.
요즘 김치에는 과일과 온갖 재료가 들어가지만, 이 김치는 달고 아삭한 가을 무와 무청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엄마의 음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즘 말하는 '웰빙 음식'의 범주에 들어간다.
요즘은 양념이 다양해졌지만 오히려 양념을 아끼고 활용했던 예전 음식 문화가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진정한 웰빙이었던 셈이다.
엄마는 매년 늦서리 맞은 땡초 고추로 무 풋김치를 커다란 항아리에 한가득 담그셨다.
김장 전부터 맛이 들기 시작한 그 김치는 거의 한겨울 내내 우리 밥상에 올랐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장독 뚜껑을 열고 무청 김치를 한 양푼 퍼 오면, 뜨끈한 된장국에 밥 한술 말아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웠다.
풋고추가 익으면 무 특유의 시원한 맛과 어우러져 칼칼하고 감칠맛이 났다. 김장 김치와는 또 다른 깔끔한 맛이었다.
정작 빨간 양념에 온갖 재료가 들어간 김장김치는 텃밭 땅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큰 항아리 무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왜 김장김치를 꺼내지 않느냐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푹 무르게 삶은 고구마와 곁들여 먹으면 그 또한 별미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째다.
오랜 병석에 계셔서 엄마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떠나시고 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밀려왔다.
떠나시면 안 된다는, 그런 슬픔이 아니었다.
엄마가 떠나신 빈자리는 살아생전 엄마의 아픔과 슬픔들을 헤아려보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엄마'로 살아낸 긴 세월, 그녀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슬픔, 멈추지 않을 거 같던 눈물이 서서히 잦아들고, 이젠 그리움을 대신하는 건 '엄마의 밥'이다.
형제들은 어린 시절엔 다투기도 하고, 공기처럼 고마움을 모르다가 엄마가 떠나시고 나니, 세상 어딘가에 그 슬픔을 나눌 형제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고, 그들의 어깨가 안쓰러웠다.
엄마가 애지중지하시던 막둥이 남동생이 얼마 전,
"엄마가 담아주신 무 풋김치 참 맛있었는데요..."
그 말에 가슴이 "쿵!" 울렸다.
그렇지, 그런 엄마 김치가 있었지.
그래서 어설픈 솜씨로나마 그 김치와 배추 동치미를 담가 보았다.
비주얼은 얼추 비슷하지만, 닮은 듯 아닌 맛이 난다.
택배를 받은 동생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내년에는 더 엄마 손맛에 가까워지도록 담가볼 생각이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건 따뜻한 밥이다.
그것도 사랑이 깃든, 엄마표 밥상이다.
그 사랑의 밥을 철없이 당연하게 먹고, 볼이 빨갛게 건강하던 그 시절이 유난히 그립다.
비록 엄마가 차려주신 건 아니지만, 그 반찬에 밥을 먹고 나니 이 계절의 헛헛함이 조금은 가신 듯하다.
이제 기억 속 엄마의 밥상은 따뜻한 아궁이의 불씨처럼,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오래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