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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천사들 8화

이별의 그날

by 김사임



처음 하루하루를 세던 날들은, 일주일, 한 달, 몇 달 되지 않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별의 날이 훌쩍 다가왔다.


힘든 출퇴근도, 이상한 청년도 신경 안 쓰고, 지친 근무에서 해방이다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이들과 너무 정이 들어버렸다.


선비 같은 재형이, 씩씩한 현기, 멋쟁이 정화, 개구쟁이 상권이, 말쑥한 백찬이, 솜씨 좋은 윤희...

42명 아이들의 얼굴과 성향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헤어지기 며칠 전부터 밤마다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이 그토록 순수할 줄 몰랐고,

그렇게 부족한 나를 잘 따라와 줄지도 몰랐다.


헤어지던 날,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날이 마지막인 걸 알게 된 아이들은 "선생님 가지 마세요!"외쳤다.


우린 마치 사랑하는 아이를 두고 떠나는 엄마처럼, 그 엄마를 보내는 아이들처럼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아이들과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서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교무실 유리창 밖까지 몰려왔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눈빛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는 심정이 이런 걸까.


처음 아이들을 만나기 전의 떨림과 두려움, 계속되는 실수와 후회 그리고 감동과 보람,

길지 않은 시간 깊은 정이 들기까지, 드라마틱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교무실에서 교무주임 선생님이

"에.. 아이들 지도해 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한 말씀하시지요!." 하시는데 자꾸만 창문 밖 아이들 애절한 눈빛만 보였다.


입술을 달싹이려고 하면 눈물이 터질 거 같아서, 번이고 말하려다 결국, 바보처럼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부족함이 많은 저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인사는 아이들과 이별의 슬픔 앞에 속으로 삼키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며칠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과 이별은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이미 예정된 이별이었건만,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선한 눈빛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만나러 오라고 하셨지만 일부러 가지 않았다.


아기 출산 후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새 환경에 적응하는데, 내가 걸림돌이 될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들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들이 도착했다.


그동안 말로 할 수 없었던 어린 속내들,

미래의 꿈을 향한 다짐들, 새로운 선생님과의 이야기들까지...

아이들 순수하고 고마운 마음이 또 한 번 나를 울리고 감동시켰다.







세월이 흘러도, 잠깐 머물렀던 교생 선생님의 신선함이 기억에 남듯,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나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나는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살다가 세상 속에서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 눈에 비친 그 순수함과 거침없는 의욕이라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모두들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고마웠다!

부족하고 어설펐던 나의 20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막연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진실한 삶의 의미를 찾겠다며 이상적인 가치에 매달렸지만, 막막한 허무감에 지쳐가던 그즈음, 순수한 눈빛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아이들과의 만남은,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던 나를,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용기 있게 나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가슴에 순수한 감동과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한, 영원히 잊지 못할 그곳의 천사들.









***아이들과 헤어진 뒤,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학교를 2년 전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교정은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고, 운동장 앞에 펼쳐진 바다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리운 아이들이 없는 교정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지더군요.


세월이 흘러도 시간으로 닳지 않는 변치 않는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아이들을 통해 느꼈던 순수한 사랑,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그리운 감정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 깊은 곳에서 아릿한 통증이 밀려옵니다.




***'그곳의 천사들'은 이렇게 8화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따뜻한 의견 보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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