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곳의 천사들 7화

환경정리와 슬픈 눈망울의 그녀!

by 김사임


학교에서 3월 달은 가장 분주한 달이다.

학생들을 파악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는 일부터, 교실 환경정리도 해야 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초등학교 선생님은 만능이어야 되는구나 싶었다.

여러 과목 수업은 물론이고, 음악과 미술 감각까지 요구되니 말이다.


환경정리 심사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다.


임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들 출출할까 봐 빵을 사고, 문방구에서 환경정리 용품도 한가득 사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환경정리를 도와주면 든든하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신나게 빵을 먹었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자 이제 환경정리를 해볼까?"


내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반장 재형이가

"선생님, 이제 가도 됩니까?"

이러는 게 아닌가


"환경정리 도와주기로 한 거 아니었니?" 했더니 당당하게 한 목소리로


"우리 오늘 축구하기로 했거든요!"


마치 출정을 앞둔 선수들처럼 당당하고 해맑은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흔쾌히 승낙할 수밖에... 아이들은 축구 열기에 빠져 있었다.






바람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간 휑한 교실에서 혼자서 환경정리 하느라 낑낑대고 있는데,

그때 교실 뒷문이 스르르 열렸다.


2학년 여선생님이셨다.


눈이 크고, 공주님을 연상시키는 예쁜 얼굴,

세상 힘든 일은 한 번도 겪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아가씨 선생님이었다.


교실을 둘러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환경정리 잘하시네요.

우리 반도 좀 도와줘요!"


때마침, 우리 반에 들리신 다른 여선생님이, 복도로 내 어깨를 이끌며 귀에 대고 속삭이셨다.


"도와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 지금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답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의아했지만, 나중에 들은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동그랗고 아담한 여선생님께는 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 처참하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로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 지도는 안중에도 없고, 하루 종일 창밖의 바다만 넋 놓고 바라본다고 했다.


교탁에는 교과서 대신 개인 소지품을 늘어놓고, 학생들 지도는 엉망이 되었으니, 당연히 학부모 민원이 쇄도한다고 했다.


아침 출근길에 그녀는 베이지색 정장에 슬리퍼를 끌고 왔다.

한때는 그녀도 패션감각이 좋았겠구나 싶지만, 때가 타고 구겨진 베이지색 정장은 이미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오염이 되어있었다.

정장차림에 슬리퍼를 힘없이 끄는 그녀의 발걸음은 보는 것 만으로 참으로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저리 곱고 예쁜 사람이 대체 무슨 아픔을 겪었기에 저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사랑의 아픔이 뭔지도 모르던 나는, 그녀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학교에서는 공석이 될 그녀의 자리를

나에게 맡아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출퇴근과 아이들 지도로 지친 상태였던 나는 거절했다.


"처음 적응하느라 힘드신 거지 잘하실 거예요!."

재차 권유하셨지만, 그땐 세상의 수많은 직업에 대한 기대감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 사랑의 아픔이 찾아왔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 녀를 떠올렸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그랗고 예쁜 그녀의 눈과 창백하던 얼굴...

현실에 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바다만 응시하던 그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삶의 상처는 하늘의 구름처럼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깊은 바닷속에 화석처럼 깊숙이 박혀 있다.


'도대체,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