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주 잠깐 수영 강습을 들었다. 처음 몇 시간 '음파 음파'연습과 발차기 강습이 있었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에 즐거웠다. 문제는 두 팔을 번갈아 저으며 발차기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팔을 번갈아 저을 때마다 몸이 가라앉았다 떠올랐다를 반복했다. 호흡도 자연스럽게 안되었다. 물을 먹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수영을 배우겠다는 계획은 철회되었고 난 여전히 수영을 못한다.
초급반에만 수강생들이 득실거렸다. 중급반과 고급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강습생 인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초급반 개강날 레인을 꽉 채웠던 수영 초보들을 어디로 갔는지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레인이 한산해졌다. 우리는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복직하기 전, 운동을 해보겠다고 필라테스 3개월 수강권을 끊었다. 처음 2주 정도는 수업일을 기다리게 즐거웠었다. 이내 하루 이틀 핑곗거리가 생겼고 두달치 수강료는 학원에 거저 갖다 바친 꼴이 되었다.
책을 꽤나 읽었으나, 기록되지 않은 감상과 정보들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2020년에는 책을 읽고 짧게라도 글로 정리해보기로 결심했었다. 현재 블로그에 남아있는 도서 리뷰는 겨우 다섯 편뿐이다.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기록까지 하고 있나.' 나는 또다시 얄팍한 핑계에 넘어갔고 쉽게 그만뒀다.
체력이 바닥인 듯 힘이 들었다. 꼭 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으리라 다짐하며 건강원에서 두 달치 약을 지었다. 초반에는 하루에 두 봉지씩 꼬박 꼬박 챙겨 먹었다. '꼬박 꼬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부는 베란다에서 냉장고로 옮겨 보관되었고 결국 이사 준비를 하는 날 주방 하수구에 버려졌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를 바랐다. 아이들은 읽기를 싫어했고 쓰기는 진저리를 쳤다. 겨울 방학 이런저런 자료를 제법 많이 만들어 두었다. 3월 새 학기가 너무 바빴다. 알록달록 예쁜 자료들은 아마 지금도 서랍장 어딘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일을 좀 꼼꼼하게 해야지. 이제부터 메모를 습관화해야겠다! 한 곳에 꾸준하게 적어야지! 때마침 학교에서 두툼하니 좋은 다이어리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수첩은 내년에 다시 써도 될 지경이다. 수첩이 생긴 이후에도 난 이면지에 찍찍 갈겨썼고 곧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내 결심도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내가 어떻게 큰 실수 안 하고 그 많은 학교 일정을 기억하며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림책 활용과 관련된 연수를 찾아들었었다. 연수는 유익했다. 강사 선생님이 꽤 젊었는데 학생들과 함께 제작하고 활용한 다양한 그림책을 소개했다. 연수를 들으며 젊은 선생님의 노하우가 부럽고 놀라웠다. 수업에서 활용하고 싶어 30차시 연수를 열심히 들었다. 소개된 그림책들도 구입해서 열심히 보았다. 연수가 끝나고 수업에 적용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작은 시도조차 못해봤고 난 여전히 막막하다.
내가 포기한 것들을 나의 기억에서 건져 올린다. 끝도 없이 올라올 듯하다. 위에 나열한 것 말고도 수십 가지. 나는 열정도 없었고 끈기도 없었다. 주제넘게 욕심은 많았고 제대로 빼어난 것 하나 없는 나 자신이 갑갑했다. 이거 찔끔 저거 찔끔,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탁월함에 목말라 그 언저리를 더듬으며 입구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그릿'이 부족했다. 조금만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해결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관심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내게 부족했던 것은 재능이 아니라 '그릿'이었음을 인정한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없었다. 몇 번 방법을 찾아보거나 시도해보다가 길이 보이지 않으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이 다반사였다.
다행히도 '그릿'을 읽었고 나는 손에 좋은 무기 한 자루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