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 팔. 당혹스러운 숫자였다. 내가 남들에 비해 얼마만큼 똑똑한지 객관적으로 수치화한 데이터라는 아이큐.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 두 자리 숫자를 확인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중학생 때가 아니었을까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분명 세 자리 숫자여야 했는데 한 자리가 부족했다. 보통의 사람이 120 정도의 아이큐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내게 실로 충격적인 숫자였다.(잘못된 상식이란 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너 아이큐 두 자리냐?' 그런 류의 농담은 내게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타고난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내가 평균에도 못 미치는 아이큐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게 된 것은 불운이었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몰랐다고 해도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이다. 내게 최악은 사는 내내 지속해온 패배자적인 태도와 가치관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정말로 갖지 못한 것은 좋은 머리가 아니라 '끝까지 하겠다'는 삶의 태도였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뿌옇게 탁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비겁하고 삐딱했다. 애초에 잘못된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원하는 곳에 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나이 마흔하나 다행히도 내가 가진 지도와 나침반에 큰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릿'을 만났기 때문이다.
광고인이자 작가인 박웅현의 저서 '책은 도끼다'의 저자의 말에는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일부 실려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박웅현은 이 문구를 소개하며 그가 읽었던 좋은 책들은 그의 도끼라고 했다. 그의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나는 여태껏 도끼 한 자루 쥐지 못했었다. 최근 5년간 책을 꽤 많이 읽었었지만 그저 단순한 재미와 소소한 감동 그뿐이었다. 기록하지 않았고 오래 기억되지 못했다. 시간과 함께 풍화되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제야 나도 도끼를 찾았다. 그것은 나를 겹겹이 싼 가면을 가르고 부쉈다. 내 욕망과 마주하게 했고 나를 엉망으로 몰았던 재능 신화적인 태도를 질책했다. '그릿'은 내가 포기하고 멈춰 섰던 온갖 순간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의 이력이 독특하다. 그녀는 고액 연봉을 주는 잘난 회사를 그만두고 수학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한다. 단번에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재능 있는 학생과 처음에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고전했으나 끈기 있게 파고드는 학생들의 최종 성취는 그녀의 처음 기대와 달랐다고 했다.
뛰어난 이해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쉽게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했던 학생들 중 적지 않은 학생이 저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반면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끈질기게 노력한 학생들의 경우 노력이 결국 성적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녀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수학적 재능과 수학적 성취 사이에는 등호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더 교직에 머물렀던 동안 재능이 성취를 좌우한다는 확신이 줄어들었다. 반면에 노력의 결실에 대해 흥미가 강해졌다. 결국 재능과 노력, 성취 사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그녀는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 '그릿'은 저자가 재능과 노력, 성취 사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수년간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탁월한 성취의 비밀은 재능이 아닌 노력에 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연구 결과를 믿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