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틀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 틀은 괴상했고 형편없었다. 내 시선에 좋은 것은 재능이나 지능처럼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은 격이 떨어져 보였다. 멋있는 것은 타고난 것이어야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a양은 진짜 노력파였다. 별로 친하지 않았도 그 아이가 앉아서 공부하던 뒷모습이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만큼 그 친구가 공부하는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녀를 나는 '대단하다', ' 놀랍다' 긍정적으로 생각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뭘 저렇게까지...'라고 은근슬쩍 폄훼하기까지 했다. 저렇게 공부해서 1등을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은근히 깎아내렸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나의 짝꿍이었던 b 양, 그녀는 나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반은 졸고 반은 딴짓을 했다. 특히 만화에 심취해있어서 툭하면 만화책을 보곤 했다. 그렇지만 머리 하나는 기똥차게 좋은 듯했다.
어떤 공부도 쉽지 않았지만 한자 외우기는 날 참 고달프게 만들었었다. 집에서 꽤 시간을 들여 한자를 열심히 외웠다. 가로세로 대각선 그리고 점의 복잡한 조합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엎드려 퍼질러 자다가 게슴츠레한 일어나 나를 애먹이던 그것들을 쉽게도 머릿속에 넣었다. 그 친구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상위권은 아니었다. 노력의 양에 비해서는 항상 좋았었고 나는 그게 놀랍고 부러웠다. 많이 부러웠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 큰 성취는 운이 따라야 하는 것, 재능을 타고난 운동선수를 노력형 선수가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런 믿음이 나의 사고방식 저변에 깔려있었다. 게다가 타고난 능력이라는 것은 주로 고정적인 능력이라는 믿음.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한심했고 나에게 이득 될 것도 전혀 없었다.
나는 꽤나 욕심 많은 아이였다. 문제는 욕심만 많았다는 것이다. 욕심은 많았으나 그에 걸맞은 노력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지 않고 핑곗거리를 찾기에 성공의 원인을 재능으로 돌리는 것은 참 적당한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성공한 이유를 재능이나 지능에서 찾는 것, 그들의 노력과 끈기를 재능이라는 단일 요인으로 치부한 것은 못난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면죄부였으리라.
할 수 있는 것만을 시도하며 실패를 피하는 삶, 그것은 나를 안전지대에 머무르게 했을 것이다. 가능한 곳으로 진학을 하고 가능한 연애를 하고 가능한 직업을 택한 것, 그곳에 반짝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