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탔던 일을 기억한다. 출발 직후부터 운행이 끝날 때까지 한 구석에 처박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했었다. 주위는 노랫소리와 차가 쿵쿵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러운데 내 시간만 정지된 듯 느리게 흘러갔다. 그 이후로 범퍼카를 타지 않았다.
겨우 알파벳 스물여섯 자 아는 상태에서 중학교에 진학했다. 낯선 언어가 어렵고 생소한 것은 당연했다. 2학년 때 친한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영어 학원에 등록했고 문법 수업을 들었다. 거의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나는 훨씬 더 몰랐고 부족했다. 내 친구는 달랐다. 나보다 기초가 훨씬 탄탄했고 쉽게 이해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영어는 제일 자신 없고 싫어하는 과목 중 하나가 되었다. 부족한 것을 채우지 못하고 난 그저 피하기에 바빴다.
고등학교 때 펌프 또는 디디알이라고 불렸던 게임이 정말 인기가 많았다. 노래 박자에 맞춰 화면에 보이는 화살표를 발로 밟는 게임이었는데 삽시간에 인기가 퍼졌다. 친구들은 시간만 나면 발재간을 뽐내러 가곤 했다. 처음 몇 번은 나도 같이 해보았지만 내가 몸치에 박치라는 것만 확인하고 기계에서 내려왔다. 이내 나는 재미없는 '척'했다. 사실은 날듯이 뛰고 싶었다.
고 3 때 치렀던 수능 시험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원하는 곳에 원서를 낸다 해도 합격이 어려워 보였다. 나는 그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답안지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기가 싫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학교, 머릿속에 떠올려 본일도 없는 학과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게 내 전공이 되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나의 태도는 참 일관적으로 무책임했다.
나는 무엇이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는지 잘 알고 있다. 나를 여기에 눌러 앉힌 것은 불안과 머뭇거림, 그리고 포기였다.
언제부터 어쩌다가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만을 골라서 했다. 잘 못할 것 같은 일에서는 은근슬쩍 뒤로 빠져나와 순식간에 구경꾼으로 돌변하곤 했다. 학창 시절 나는 종종 '시크하다'라는 평가를 듣곤 했는데 그건 내가 느낀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관심이 없는 척', '귀찮은 척' 하는 것은 내가 두려워한다는 것,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숨길 수 있는 최고의 좋은 가면이었다.
가면 뒤에 숨어 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고 될 만한 것만 시도했다. 시도했던 작은 선택들 조차도 힘이 들면 어느새인가 은근슬쩍 포기하고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평생 피해왔고 포기했다. 그 결과 지금 여기에 있다.
아니다. 마무리를 좀 고쳐야겠다. 얼마 전까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용기를 내어 반대편으로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