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무협이 좋아지는 이유

#21

by 나의해방일지

내가 무협소설이라는 존재를 처음 인식한 것은 아마도 중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이모부가 무협소설에 빠져 허구한 날 그것만 붙들고 있는다며 이모가 불평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나는 무협이라는 장르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어른들이 좋아하는 유치한 놀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무협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원래 만화나 애니를 좋아해서 네이버 웹툰은 종종 즐겨보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직장상사의 권유로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말하자면 무협에 입덕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무협물의 세계관이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느껴져서 그야말로 무협웹툰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화산귀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작화가 뛰어나고 개그코드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대중적으로 흥행할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화산파 절대고수인 주인공 '청명'이 몰락한 화산파의 어린 제자로 다시 환생하며 겪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그 가운데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것이 매력적이다.


나는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을 시작으로 비슷한 작품(무협+회귀물) 두루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이제껏 읽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 화산귀환 이후로 가장 즐겁게 본 것을 하나 꼽자면 유진성 작가의 <광마회귀>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요즘에는 먼저 웹소설로 좋은 반응은 얻은 작품들이 이후에 웹툰으로도 출시가 되는 모양이다. 그 덕분에 웹툰으로는 아직 연재가 되지 않은 이야기의 후반부가 궁금하면 동명의 웹소설을 찾아 스토리를 쭉- 읽어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웹툰에서 웹소설로 넘어와 엔딩까지 읽게 된 첫 작품이 바로 <광마회귀>였다.


화산귀환 vs 광마회귀, 둘 중에 더 감명 깊은 작품을 고르라면 내 선택은 광마회귀이다. 화산귀환은 아직 소설 연재 중인 작품이고, 광마회귀는 이미 완결이 난 작품이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광마회귀를 좀 더 재미있게 읽었다.



"광마(狂魔)"



무협 작품에서 별호에 '미친 마'자가 붙으면 보통 마교에 속한 마두를 칭하는 것으로, 익힌 무공의 영향을 받아 본래 성격을 잃고 미치광이가 되거나 그로 인해 무림공적이 된 악당이다. 검마, 독마, 색마 등 여러 마두들 중에서도 '미칠 광(狂)'자가 붙은 '광마'는 강호에서 내놓으라 하는 미친놈 중에 제일 미친놈이라는 뜻이다.


<광마회귀>는 광마가 죽을 위기에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과거로 돌아온 광마가 두 번째 삶에서는 ‘광(狂)’을 버리고 ‘의(義)’와 ‘협(俠)’을 택하며 협객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참고로 “~한 사내, 그것이 나다.” 이 말투는 주인공 이자하의 시그니처 유행어다.)


한때 광마로 불렸던 사내 이자하. 그는 본래 일양현 촌구석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계두국수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갔던 점소이였다. 촌동네 점소이가 왜 강호의 악명을 떨치는 광마가 되었을까?


그것은 소위 흑도라는 놈들이 일하는 자들에게 늘 상납금을 받아 처먹는 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고, 끝내는 그 잘난 무림인이라는 것들이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하나밖에 없는 유산이자 삶의 터전인 객잔을 불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불에 타버린 객잔을 바라보며, 이자하는 모든 일하는 자들을 흑도의 상납금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다짐했다. 또한 점소이를 함부로 두들겨 패는 것들을 잡아다가 똑같이 두들겨 패주기로 뜻을 세웠다. 때문에 그는 모든 무림을 적으로 돌린 '무림공적'이 될 수밖에 없었건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일하는 자들이 착취와 수탈을 당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자들을 괴롭히는 놈들은 흑도에도 있었고, 마교에도 있었고, 백도에도 있었기 때문에 이자하는 어딜 가나 적을 만들었고 결국 '광마'라 불리게 되었다.


전생에서 이자하는 분노에 휩싸여 폭력을 휘두르며 광증에 사로잡힌 마귀로 살았지만, 새로운 삶에서는 다른 선택을 한다. 악인을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서 고쳐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무작정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대의명분을 쫓는다. 강하다는 것은 단지 무력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명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광마회귀>의 주인공 이자하가 치기 어린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고 동료와 수하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책임감을 배우고 성장하는 장면을 보며, 나의 혈기 넘치던 젊은 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공 실력만으로 진정한 강함을 얻을 수 없으며 마음가짐의 강함, 즉 올바른 태도와 정신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결국 가장 강한 것은 협객이다."



이것은 작품에서 주인공 이자하가 사용하는 금구소요공을 창시한 기성자(紀誠子)가 남긴 말이다. 기성자의 협객론은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기도 하다.


협객이란 무엇인가?


협(俠)이란, 약자들을 돌보고 타자의 원한을 갚아주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하고, 의(義)는 사사로운 이익을 좇지 않는 올곧음, 부당함과 악에 맞서는 단호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무협에서 말하는 협객이란, 자기 목숨을 버릴지라도 무(武)로써 의로운 일을 하고, 약자를 지키는 사람이다.


어느 시대나 일하는 자들이 힘 있는 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협객은 늘 조롱을 당하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목숨일진대, 보잘것없는 약자의 원한을 갚기 위해 그 목숨을 거는 자가 있다면 범인의 눈에는 얼마나 우습고 미련한 일이겠나.


그러나 기성자는 협객은 미련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강한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자만이, 무공의 높고 낮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정한 강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무협의 세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른이 되면 왜 무협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까



내가 느낀바, 무협은 단지 도사들이 칼을 휘두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들은 무협의 세계 속에서 젊은 날에 내가 지키고 싶었던 마음속의 그 순수함을 다시 한번 꺼내보게 된다. 현실에서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 그 신념을 따르며 살기가 어렵다. 하지만 무협에서 강호에 몸을 던진 주인공들은 그걸 거리낌 없이 실현한다.


마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갔던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고기 잡던 그물을 던져두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무공'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를 쫓기 위해 유랑하는 무림인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왠지 모를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힘이 있어도 함부로 휘두를 수 없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고, 또한 공권력의 통제 아래 사사로운 폭력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현실엔 제대로 된 '정의구현'이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고, 눈앞의 명백한 악을 '참교육'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반면 무협에서는 주인공이 단칼에 적을 베어버린다. 약자를 돕고 부당함에 맞서는 이 거침없는 힘을 통해서, 어른들은 마음속 한켠에 쌓여있던 감정의 해소를 경험한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처 죽이고 싶은 사람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사는 거니까)


일, 관계, 책임에 묶인 어른들의 현실세계와는 다르게 강호(江湖)에는 스스로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늘을 지붕 삼고 들을 침대 삼아 유랑하는 떠돌이. 오늘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산에 오르고, 내일은 서역 끝 바다에 닿을 수 있는 박력. 내공은 수련을 통해 쌓여가는 것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강함.


끝없는 성장의 과정에서 주인공은 의와 협을 쫓아 백도의 길을 걸을 수도, 아니면 흑도나 마도가 되어 끝없는 강함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엔 자기만의 길을 걷는 당당함과 호연지기가 담겨 있다.


"넓고도 당당하며 거칠 것 없는 마음의 기운"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어떠한 두려움에도 얽매이지 않고 걸어가는 마음의 자세. 권력과 배신, 음모를 만나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자기를 지키는 마음이 바로 ‘호연지기’이다.


어른이라면, 아니 서른을 넘긴 남자라면 누구나 호연지기를 품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다만, 책임질 것들이 많기에 참고 포기할 뿐이다.


그러므로 무협은 결국 강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무협물의 주인공은 늘, 검을 휘두르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 내면이 약하면 어떠한 무공도 제대로 펼칠 수 없고, 내면이 강하면 목검 한 자루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무협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와 같은 어른들이 꿈꾸는 이상과 판타지에 닿아 있다. 누구나 힘을 추구하고, 또 그 앞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일지라도, 사실은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믿고, 그걸 지키며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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