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20

by 나의해방일지

이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나는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혼 후, 다시 나를 되찾는 여정'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꼭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나를 되찾는 것도, 나로 사는 것도 가능한 것이니까.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대략 10개월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글을 쓰며 스스로를 관찰해 보니, 나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큰 깨닮음을 얻는 사람이다. 왜 그럴까? 나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교육이던, 철학이던, 종교던 간에 세상의 모든 지혜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길을 알려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사람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기에,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것을 타자와의 대화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물론, 나는 타인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타고나기를 소통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것은 익숙한 반면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반응하는 것에는 꽤 서툰 편이다.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만 상대가 기대하는 수준의 공감이나 표현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앞으로도 사교적인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종 내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할 것이다. (또는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게 비춰지는 까닭은 내가 개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이던 그 본질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꿰뚫어 보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나는 그것을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어쩌면 홀로서기와 고독은 나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결국 나는 본질에 대한 탐구, 모든 일에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진중한 방식으로써 내 삶을 채워나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이 내가 신학을 공부했던 까닭이고, 한때 회의감을 느끼고 교회를 떠났지만 지금 다시 목사가 되어 사역을 하고 있는 이유다.


사회에 뛰어들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세속의 조류에 휩쓸려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걸 느낀다. 연봉이 오르면, 더 높은 연봉이 보이고, 돈이 모이면,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더 많은 돈을 모으는 방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더 가지려고 눈에 보이는 것을 쫓기 시작하면, 결국 나는 나답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더 가지려는 욕심은 끝이 없을 테니까.


애초에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것은, 성도들의 자비심(헌금)에 나의 생계를 의지하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뭘 하든 소신껏,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문제는 그 적당한 선을 찾고 균형을 잡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교회사역을 때려치웠을 때, (당시에 나는 준전임사역자로 월 140만 원을 받고 살았던 터라) 월 300만 원을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때 세운 목표를 진작에 뛰어넘는 수입이 생겼지만, 아직도 벌이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젊었을 때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허면서 여전히 해야 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삶의 중심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 나는 해야 하는 일(돈을 버는 것) 7, 하고 싶은 것 3 정도의 비중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만약 하고 싶은 것을 7 만큼 하고도,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러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것이 고민이다.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지금보다 더 시간을 쪼개어가면서 쓰고 잠을 줄여가며 하고 싶은 일을 더 하는 방법이 있고, 둘째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현재의 소득에 자족하는 법을 배우는 방법이 있다. 내 적성에는 전자가 더 마음에 드는데, 결국 후자의 방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왜 돈을 벌고 있는가.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이걸 묵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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