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옻이 오르다!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떼던 때를 기억하는가?”

by 유이지유

[옻이 오르다!]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떼던 때를 기억하는가?


나는 기억한다.


내 ‘사회를 향한 첫 발’은 신호 앞에 그어진 횡단보도의 하얀 금으로 남아 있다.


*

그 애가 다닐 ‘곤지암 학교’는 어른의 걸음으로는 집에서 20분 남짓 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곤지암 ‘초등학교’라고 쓰면 당시 내가 다닌 학교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국민학교’라고 하면 현재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모르는 가상의 교육과정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그냥 ‘학교’라고만 적는다.)


버스를 타기에 엄마에게는 여러모로 돈이 아까웠을 시절이다.

한 시간에 한 대 꼴이었던 버스를 타고 입학식에 갈 생각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이미 예비 입학 소집에 다녀왔을 그 애는 전날의 본 것을 떠올리며 느린 발로 걸었다.

마을 사람 남녀노소를 전부 합해도 입학식에 모여든 아동의 수만큼도 안 됐다.

평생 본 동네 사람보다 많은 애들 틈에 끼어야 한다는 것에 지진과 같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 애는, 그런 곳에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예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의 기억.

엄마를 따라나서는 발걸음이 뭐가 그리 서러운 지 바닥만 보고 걸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와의 분리불안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여느 초등학교 입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재촉하는 손에 끌리다가 하는 수 없이 멈춰 선 것이 신호등 앞이었다.

신호가 바뀌기까지 얼마나 됐을까?

바닥에 그어진 선을 선명이 기억할 정도로 아주 오랜 시간을 신호 앞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은 신호가 지금보다 길었나?

아니면 기분이 늘려준 기억의 시간인가?

왜 그 낯선 곳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야 했던 기억. 설렘보다는 불안함에 떨어야 했던 감정이 어린 날의 시간을 길 시간으로 심어둔 것인가?


시간에 대한 감각도 상대적이라고들 하니까!


별 감흥 없이 흘러간 시간을 통째로 기억 상실해 버릴 수 있듯이,

짧은 순간 일지라도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면 영원처럼 길게 늘어날 수도 있는 거겠지.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지워버릴 수도 있는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일까?

사회화의 첫 단계 과정에 남아있는 장면은 좋은 감정으로 남아 있지 않다.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울면서 학교로 걸었다.


이 무렵의 기억들은 별 유쾌한 것이 없어서 사실 많은 장면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왜 유쾌한 것들이 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두 번째 장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두 번째 기억.

사회화의 첫 발, 즉 자연스러운 교우 관계가 형성돼야 할 시기를 그 애는 애석하게도 놓치고 말았다.

이제 막 반을 배정받고 누가 누구와 친해질지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 시기에 그 애는 그만 옻이 오르고 말았던 것이다.


입학식 때 하얀 횡단보도의 선을 눈물로 바라보던 낯섦과 두려움은 이미 사라지고, 넓어진 세상에 적응할 준비를 마친 그 애였다.

함께 자란 쌍둥이들은 동네에선 친구이나 학교에서는 오빠들이었다.

줄어든 놀이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거칠 것 없이 산과 들을 누비벼 놀았다.

뛰놀면서도 머리 한 구석에는 학교 가서 반 아이들에게 자랑할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말이 되고 학교 갈 때가 되었지만

“학교 가자~”란 쌍둥이 친구들의 부름에도 그 애는 벌떡 일어나지 않았다.


옻이 오른 그 애에게 다가가는 초등학생은 없었다.

사회화를 위해 이제 막 가정을 떠나온 아이들에게 이타심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자면서도 무의식 중에 긁어대는 바람에 얼굴은 이미 살쾡이에게 핥인 것처럼 붉은 줄로 가득했다. 눈이며 코 옆이며 입 아래며 연약한 곳 중에서도 더 연한 곳에는 여지없이 울긋불긋한 점들이 피어올라 흉측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대기에 손 두 개는 턱없이 모자랐다.


안 가겠다며 버티는 그 애의 손을 엄마가 억지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미 함께 등교하는 일이 없게 되었던 엄마였지만 이 날은 어쩔 수 없이 끌고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 애는 아주 고집이 셌으니까. 엄마에게 붙들린 한 손은 어쩔 수 없고, 자유가 허락된 한 손만으로 몸을 긁어댄다. 욕을 먹어도 긁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지금처럼.)


이 날도, 횡단보도 앞에 서서 금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눈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입학 날의 느꼈던 감정이랑은 다른 건데...

어깨까지 들썩이는 울음으로 바뀌어 갔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아마도 그때의 그 아이는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반 아이들과 꽤 서먹한 거리로 지내게 될 것임을.

하고 싶었던 많은 놀이를 그들과 할 수 없게 될 것임을.

가려운 등을 긁어줄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것임을.



이것이 나의 첫 사회화에 대한 기억이다.






몇 십 년의 시차를 두고, 인생 2번째로 옻이 올랐다.

어이도 없고, 별의별 감정과 생각이 다 들면서,

초등 입학 전에 옻이 올라 무지하게 힘들었던 기억이 어제처럼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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