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나선 길이었지만, 정말 혼자가 되고 나면 퍼뜩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하네.
삼평은 이름도 처음 듣는 고장이야.
그 다음이 사평역도 아니고,
어딘지도 모를 곳.
이런 외딴곳에 열차가 놓였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역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인적을 느낄 만한 불빛은 하도 희미해서 정말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건지 환영 같아.
만일 이곳에 얼어붙는 시절에 도착했더라면 이렇게 편지도 적지 못했을 거야.
찬 기운을 피할 곳이 없어 손가락이 얼어붙어 버렸을 테니까.
다행이야, 이곳에 도착한 게 아직 기운이 내려앉은 시기가 아니라서.
별빛이 이리 밝으니 책도 몇 줄 읽어보고 편지도 적어보지 않겠어?
밤은 아직 다 내려앉지도 않아서 긴 문장을 적을 수 있겠다 싶어.
또한 이런 시절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그대라서 다행이야.
어차피 닿지도 않을 것이라 그대의 진짜 이름으로 적어도 되련만 나는 차마 그러지도 못하네.
이름만 덜렁 적어놓고 무슨 말을 적어야 할까 멈칫했지.
적는다고 무슨 의미도 없는데 적어서 무엇하리 하는 마음만 맴돌았거든.
나의 문장이 그대의 삶에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지도 않네.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 어디서 어떻게 한순간에 틀어질지도 모르는 삶이야.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외딴곳에서라도 주저 없이 다 적어보고 싶어.
거리낌 없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어차피 아침이면 선로 끝으로 흩어질 글이기에 나는 온갖 내 마음을 그대에게 보내기로 했어.
이런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로 했건만 나의 글은 그대를 향하지 못하네….
*
시절을 거스르고 울어대는, 한가한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도 따라 한가해지더군.
말했듯 별빛도 밝아 적는 글이 잘도 들어왔지.
그래서 내 손을 따라 문장을 읽었어.
누군가가 보내 주는 문장들을 따라 걸어.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이미 쓴 편지를 나는 그저 받아 적을 뿐이었어.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문장들인지 궁금해졌어.
왜냐면 이전에 내가 알지 못했던 단어며 비유들이 그냥 쏟아져 내렸거든.
처음 만나는 단어를 입으로 몇 번이나 되뇌며 의미를 찾아보기도 했어.
그러다가 겨우 뜻을 발견하고 다음 문장을 이었지.
무슨 말인지도 모를 것들은 그냥 적어두기로 했어.
다행히도 밤은 기니 우선은 써두고 다시 읽으면 될 일이지.
...(생략)
From. 지유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