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 <사평역>을 읽고
“만일 내가 눈 내리는 사평역의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면?”
이런 상상으로 글을 적어본다.
나는 지금 눈발이 펄펄 내리는 역사의 대합실에 앉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차푯값을 지불한 여덟과 늘 무임승차인 미친 여자까지 합이 아홉이었다.
늙은 역장의 침침한 눈에 난데없이 끼어든 내가 보일 리 없었다.
나도 이들 틈에 엉덩이를 비집고 앉았다.
열이나 있는 대합실은 조용했다.
산골짜기를 돌아온 바람에 유리창이 이따금 덜그럭거리고 톱밥 튀는 소리가 들릴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을 잊었다.
어쩌면 그들은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년 사내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성냥불을 당기다 말고 불빛만 들여다보고 말을 잊었다.
노인을 안고 있는 농부도, 대학생도, 쭈그려 앉은 아낙네들도, 밍크 목도리와 코트의 서울 여자도, 머플러를 쓴 밤거리의 춘심이도 저마다 손바닥들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망연한 시선을 난로 위에 모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만치 홀로 떨어져 앉아 있는 미친 여자도 지금은 석고상으로 고요히 정지해 있다.
이따금 노인의 기침 소리가 났고, 난로 속에서 톱밥이 톡톡 튀어 올랐다.
“흐유, 산다는 게 대체 믓이간디...”
그러자 저마다 그 말꼬리를 붙잡고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에 잠기는 이들을 틈에 끼어 앉아 나에게도 반문해 보았다.
‘정말 산다는 게 대체 무얼까?’
*
중년 사내에게 삶은 햇볕도 바람도 흘러들지 않는 ‘폐쇄된 벽돌담’ 같은 것이라 한다.
늘 기다려야 하는 뒤처지고만...
농부의 생각엔 누가 뭐래도 흙과 일뿐이다. 계절도 없이 쳇바퀴로 이어지는 노동.
등뼈가 휘도록 일하고 근심하다가 끝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리라.
서울 여자에겐 돈이 삶이라 한다.
두 아들 행복한 데 쓰일 돈만 있으면 과부인 삶도 그런대로 만족할 것 같다고.
밤거리의 춘심에게는 골치 아파서 애당초 생각조차 하기 싫은 무언가이다.
술 취해 울게 만들 뿐….
대학생에겐 이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그 무엇.
자신의 신념을 막아서는 세상과 싸워야 하지만 혼란스럽게 하는….
행상꾼 아낙네들에게는 허허한 길바닥 같은 것이다.
당장 팔아야 할 보따리의 짐이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과 빈둥대는 술 취한 남편인 것이다.
저마다의 사정이 다르고 처지도 달라 보이지만, 결국에 모두 역사의 불 앞에 둘러앉은 이들이다.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지나는 특급열차에 실망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똑같은 처지인 것이다.
결국, 기차는 올 것이고 각자의 목적지에서 내리겠지만 향하는 곳이 다른 곳이라 할 수 있나?
늙어 사리 분별이 흐릿하고 괴팍해진 노인이 짐스러워서 소리라도 버럭 질러주고 싶은 아들.
그에게 부모는 짐스럽다. 정말 짐이다. 앞뒤 안 맞는 막무가내 고집으로 병을 키우고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 놓고는 원망이나 해댄다. 제 방식 제 고집을 부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죽는다며 엄살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농부 아들은 노인이 원하는 대로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누르고 오밤중의 눈 펑펑 나리는 역까지 엎어 왔다.
울화통이 안 나고 배기겠는가?
꼴도 보기 싫어 툴툴거리다가도 노인의 기침 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한평생의 고통이 짙게 고랑을 파여 추해진 얼굴에 죄스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다.
농부 아들의 모습은 우리 누구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무 똑같아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작가는 산다는 것이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 쬠을 하는 얼굴 속에서 잠시 잠깐 새의 아늑함과 평화스러움을 알아가는 것이겠지.
타오르는 불꽃에 비치는 얼굴은 환한 삐비꽃을 닮은 누군가의 얼굴들이다.
산기슭 밭둑에 흔하디 흔하게 피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삐비꽃.
꽃이 피기 전에 부드러운 삐비를 뽑아서 씹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고 한다.
헐벗은 시절에는 이것을 껌처럼 질겅질겅 씹으며 잠시의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쓸모없어 보여도 누군가의 시절을 견디게 해 주었다.
외따로 일 때는 꽃 같아 보이지도 않아도,
물결이 되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흩날릴 때는 장관을 이루는 것이 삐비꽃이다.
삐비를 닮은 우리네 얼굴들. 톱밥 한 줌에 삐비꽃 어머니, 또 한 줌에 아버지, 동생….
한 줌 한 줌마다 알았던 얼굴들을 떠올린다.
잠시의 삐비꽃의 환상에 기대는 것이 삶이겠지.
그렇게 다 뿌려 넣고 넣다 보면 다 털어내는 날이 오겠지. 그리움도 서글픔도….
호르르르.
결국엔 다 한 줌의 재로 흩어지겠지.
불꽃처럼….
나의 삶도, 그 누군가의 청색 손등을 덮이는 톱밥 한 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