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샌드위치와 크리스마스이브

12월 24일 -오늘의 삶그림

by 유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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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점심, 샌드위치.

점심으로 샌드위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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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로 빵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는 건 마다하지 않지만, 몇 년간 내 돈 주고 빵 산 기억이 없다.


어쩌다 빵순이였던 때가 있다.

의도치 않게 빵을 참 많이 먹게 되었다.

나름 빵에 준전문가(?) 수준급이 됐던 건, 아일랜드 어학 시절이다.


겨우 마련했던 반지하 전세금 몽창 털어 떠났던 당시는, 마침 유로 환율의 폭등기였다.

3개월 생활비도 모자란 처지라, 삼시 세끼를 거의 쨈 바른 빵 아니면 오트밀로 때웠다.

그들의 김치나 마찬가지인 빵은 싸고도 맛이 좋았다.

갓 구운 빵을 2유로로 해결할 수 있었다.


‘빵 한 덩이로 몇 끼를 버텼더라? 외식은 그림의 떡이라 기억도 없네.’


살림이 핀 건 운이 좋게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에 알바를 구하면서였다.

당시 한국의 1시간 알바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급으로 주머니도 넉넉해졌는데, 꼼수로 식비도 세이브할 수 있었다.

직원은 4시간에 한 번 휴식을 취하며 샌드위치와 음료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가장 싼 메뉴인 BLT(베이컨, 양상추, 토마토) 샌드위치가 얼마였더라?

가물하네. 3유로쯤 했던가, 넘었던가?


아무튼 가장 싼 게 이랬는데,

각종 토핑을 넣어서 내가 만든 건 10유로도 족히 넘는

‘벽돌 샌드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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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종 토핑을 때려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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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때려 넣은 샌드위치를 젖 먹던 힘을 다해 짜부시킨다.


*

반으로 잘라 남은 건 내일의 점심으로 챙겼다.

한 번에 먹기엔 배부르고 아까워서 챙겼는데

점장한테 딱 걸리고 말았다.


매장에서 음식을 반출할 수 없는 규정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뻘쭘, 그러나 점장은 별 말이 없었다.


내 몫을 챙긴 거라서 뭐라고 안 하는 건가?

영어가 서툴러서 말해봤자 제대로 알아먹지도 못하겠다 싶은 건가?


잘렸다가는 큰일이었다.

당시 동양인의 알바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더랬다.

그렇게 며칠을 찜찜했는데, 창고로 호출을 당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나를 마주하고 역시나 별 말이 없는 점장.

대뜸 뭔가를 내밀었다.


‘뭐냐, 그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초코와 크림 토핑의 도넛과 베이글이 담긴 봉지였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브런치 메뉴들이었다.


‘이걸 왜? 어쩌라고? 버리고 오라고?’


폐기는 영업 끝나고인데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가져갈래?”


‘엥, 반출 안 된다면서?’


어학 2개월 차의 말도 서투른 동양인을 뽑아준 것이 고마워 진짜 열심히 했더랬다.

그동안의 각종 알바로 섭렵한 화려한 실력을 뽐냈더랬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노란 머리에 회색 눈의 외국인 아줌마라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점장 덕분에 세상 어디고 사람 사는 건 똑같다는 걸 실감했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걸 알아봐 주고,

안쓰러우면 안쓰러워서 없던 융통성도 통하게 된다는 걸.


*

유럽의 크리스마스 시즌!

접객 노동자에게는 죽음이다. (올해 같은 이상한 해가 아니면.)

밀려드는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샌드위치를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가 떠올랐다.

점장의 요청으로 유학생 허용 근로시간까지 어기며 미친 듯이 일했더랬다.(세금은 많이 떼인다.)


당시 나의 냉장고는 오더 실패한 샌드위치며 유통기한 가까운 빵과 디저트로 가득했다.

동기들에게도 퍼주는 여유로운 생활을 했더랬다.


생활비는 물론, 유럽 일주 여행비까지 벌었었다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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