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처음 검사지를 작성했을 때 많이 억울하기도 했고 우울하기도 했어요.
나도 가까운 누군가의 관심을, 사랑을 받았더라면 뭔가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그랬더라면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회피하는 사람으로 자란 건가 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상담하는데 선생님도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ADHD가 오히려 우울증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며 초기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어릴 적 ADHD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성인까지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요.
왜 노력해도 안되지? 왜 사회생활 어렵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저하가 된다고 해요.
그렇게 되면 뇌는 자연히 도파민을 공급받길 원하게 되는데 담배. 술. 등에 취약해지고, 물질(약물) 중독, 행위(핸드폰등) 중독등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제 경우는 물질 중독, 행위중독 둘 다였네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 유년기는 살아남기가 급급했어요.
먹을 때도 상놈 먹듯이 먹지 말라면서 큰소리로 혼내며 밥그릇을 집어던지던 큰아버지가 무서워 늘 눈치만보기 일쑤였죠.
이모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모는 엄마에게 양육비를 받아갔고, 그 집 자식들 역시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까지 다 가져가길 원했거든요.
그래서 난 어릴 적 내 것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시절에도 중학생오빠 그리고 고등학생 언니가 사는 그 집에는 나를 위한 책도 없었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네요.
그 당시 읽은 책들 중 기억나는 건 두꺼운 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차르트. 세계사등 내 나이에 읽을만한 책들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아이들 밖에 없으니 늘 중 고등학생 언니오빠의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왔죠.
결국 그곳에도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던 거였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떻게 나를 지켰는지 알아요.
나 하나를 바라보며 달마다 보내온 엄마의 젊음과 맞바꾼 내 양육비를 압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걱정할까 봐 이러한 환경이라 말을 하지 않았던 내 탓도 있었죠.
알았더라면 엄마도 나를 그곳에 그리 두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래서 내가 고1이 됐을 때 엄마에게 알리고 난 후 엄마는 차라리 나를 혼자두기로 결정했습니다.
혼자서 잘할 거라 믿었던 거겠죠.
그래서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좋은 성적 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ADHD였더라 하더라도 성적이 좋았었던 건 딱 한 가지 이유였어요.
‘내가 못하면 엄마가 욕먹을까 봐’ 이 이유 한 가지였던 거죠.
생각 하니까 역시나 또 슬퍼지네요.
혼자 살게 되고 난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할말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생각 할래요.
병원에 다녀온 날은 늘 생각이 많아져서 금방 피곤해 지거든요.
어쨋든 이제 나는 내가 어떤 병이었는지 알았으니 치료를 해보려 해요.
나는 원래 무엇이든 혼자 잘하는 아이거든요.
시린 겨울이 지나 가면 다시 봄이 오듯이, 이 시기를 잘 버텨내서 나는 또 꽃을 피울 거예요.
그때 내가 피울 꽃은 아주 향기로운 꽃일 겁니다.
지난 35년간 늘 그래왔듯이.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