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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Dec 02. 2020

할머니지만 재미있게 살고 싶어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나는 67세이고 94세인 나의 어머니와 가까이서 생활하고 있다. 어제는 작은 김장을 하고, 굴과 수육과 함께 김장 후 남은 양념 속으로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27년생인 어머니는 아직도 김장을 직접 한다. 올해는 못할 것 같다고 하더니 그냥 또 해 버려서, 이번엔 주도권을 쥐고 해 볼 가 하던 나의 기대는 허사가 되었다.


 뒷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주방장 자리를 노리는 수습 셰프처럼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내지만, 왠지 의기양양한 뒷모습이었다. 90을 넘으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줄어드는 것 같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 말을 직접 체험하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나이 듦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과 별로 관계가 없는 노후대책에 대한 많은 이론과 비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하루하루의 생활습관에 집중하게 된다.  그냥 오늘 하루 어떻게 의미 있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가 이다. 단순하고 직관적이 된다.


어느새 12월이다. 한 해를 돌아보니 여러 일들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삶을 바꾼 코로나는 내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늦은 나이에 용기를 내어 몇 달씩 걸려  집수리를 하고, 작년 말에 시작한 게스트하우스가 코로나로 인해 거의 개점휴업이 된 일,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그러다 보니 남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시작한 여러 가지 일들.


평온하게 살아온 편에 속했지만, 막상 여러 어려움이 닥치니 오히려 더 담대해지고 어떻게 되겠지 하고 낙천적이 되어간다. 용기를 내어 브런치에 글쓰기를 하고, 유튜브를 시작하고, 운동으로 하던 필라테스를 코로나로 중단하게 되어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이 60에~~”라는 감탄 아닌 감탄이었다. 내 나이의 중년 여인들에게 기대하는 눈높이를 벗어난 일탈이라는 거북한 시선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나이를 노년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노인 연령을 70이나 75세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일탈이든 자기만족이든 남에게 해가 되는 일만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 죽을 때까지.


너무 먼 앞날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이 생각 저 생각,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계산기 두드리고 하는 시간에, 자전거 끌고 밖으로 나가 시원하게 강변을 달리고 싶다. 자전거는 사실 내 오랜 로망이었지만, 평생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자가격리’가 권장되는 현실에서 불고 있는 자전거 열풍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영어에 “right time, right place”가 있다. 우리말의 ‘적시적소’에 해당되는 말이다. 어떠한 관습에서도 우선하는 생활 팁이라 할 수 있다. 상황과 타이밍만 맞는다면 웬만한 일탈은 지혜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30년도 훨씬 전에, 유럽에 처음 출장 갔을 때 할머니들이 자전거로 도시 곳곳을 누비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부러워한 일이 있다. 어떤 상황이든, 무슨 일을 하든, 균형을 잃지 않고, 열정을 가지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함께 성장하는 것, 의미 있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 노년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의 작은 꿈이다.


아리오소’(arioso: 대범하고 거리낌 없이)라는 말은 영원한 로마의 정신을 가장 훌륭하게 대변하는 단어라고 한다. 사방으로 뻗은 로마의 대로를 통해 바람이 거침없이 통 하듯, 세상의 다양함과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자연스럽고 대범하게 그리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로마는 초기의 높은 이상을 잃고 멸망의 길을 걸었지만, 아리오소의 정신만은 지금도 내게 특별한 영감을 준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할머니이지만 열심히 일하고, 일기와 글을 쓰고, 작은 나의 방을 꾸미고, 자전거로 평화롭게 달리며, 새로운 곳을 다녀보고 싶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배움을 멈추지 않고, 선한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며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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