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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Dec 10. 2020

속초 여행

할머니 구하기

나는 가끔 속초에 간다. 이번엔 어머니와 동생과 조카까지 함께 갔다. 바로 아래 동생이 오래전 아이들 어렸을 때 남편 따라 속초에 몇 년 동안 살았었다. 큰 산과 큰 바다, 맑은 공기의 이 한적한 도시는 즉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 이후 속초는 내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별 일이 없어도 1년에 3-4번은 간다. 그냥 바다 보러~. 단조로운 내 일상의 작은 떠남이다.  


코로나로 집에 만 있던 어머니가 점차 우울증 증세를 보이더니, 허리도 아프고, 힘들다고 잠만 자더니 하루는 말을 시켜도 눈도 잘 못 뜨고, 말도 어눌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속초나 다녀올 가? 했더니, 바로 가겠다고 나섰다. 하여 즉시 예약해 놓고 시간 되는 동생들 수배하여(수행 비서) 길을 나섰다. 가기 전날 저녁, 어머니는 소풍 가는 아이 마냥, 짐 미리 싸놓고 기다리기까지 했다.


코로나로 모두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졌다. 고위험군에 속하므로, 오랫동안 나들이도 못하고 한 해를 거의 보냈다. 자식들도 더 발길이 뜸해지고, 그렇다고 전화를 더 자주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지나다가 도서관에 전시되어있는 할머니들의 글을 마주친 적이 있다. 나이 들어 초/중등 교과과정을 배우면서 글쓰기를 배우는 분들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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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계집애’ 학교 보내면 편지질이나 한다고 보내지 말라해서 학교에 못 갔다. 엄마한테 조르니, 할머니 때문에 안된다고 해서 할머니 돌아갈 때만 기다렸다. 할머니가 감기에 걸려서 아플 때, 엄마한테 그럼 이제 할머니 죽는 거야? 하고 물어보았다가 얻어맞았던 적도 있다. 16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이미 밑으로 동생들이 주렁주렁 몇이나 있어서 학교 보내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시집을 왔다.  평생 글을 몰라서 답답하고 마음이 어두웠다가, 여기 와서(주민센터) 글도 배우고 친구들도 만나서 재미있게 지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집에만 있다. 빨리 코로나 끝났으면 좋겠다.”

언택트를 권장하는 사회가 되고 있지만, 온 택트에서 소외되는 노년층은 이래저래 더 힘들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여럿이 모여 가는 여행길을 즐거워했지만, 먹는 것도 다니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좋아하는 메밀막국수와 감자전을 먹고, 바다에도 가고, 회도 먹고, 조경이 잘된 숙소 주위도 산책하며, 2박 3일의 짧지만 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왔다.

어머니는 구순의 나이에도 건강하지만 척추협착증으로 오래 걷지 못한다. 그래도 코로나 전에는 전철 타고 여러 군데 나들이도 다녔는데 요 근래 점점 더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산에서는 우리가 잠시 올라갔다 오는 동안 아래 찻집에서 기다리고, 시장 보러 간 동안에는 숙소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리해서 시장에도 같이 가서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을 직접 살 수 있었는데.  그간의 ‘집콕’ 생활도 영향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는 생기를 되찾았다. 어~ 김장이 늦었네 하며 조금이지만 김장도 직접 하고, 이가 아프다며 치과에도 씩씩하게 혼자 다녀와서는 의사가 친절하다고 좋아했다. 덕분에 나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이 들어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들 집 근처에서 살던 어머니를 가까이 모셔올 때는 그다지 많은 생각은 없었다. 요즘은 가끔 신문기사에서 노령의 자식들이 겪는 부모 부양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절로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생기를 찾은 어머니와는 조금 다르게, 산적한 문제로 복잡한 머리를 식혀보려고 급히 ‘할머니 구하기 어벤저스’에 자원했던 멤버들은 바다를 보고 산길을 오르며 잠시 잊었던 그 모든 문제와 골칫거리가 가득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낯선 일이다. 오늘 할 수 있었던 일, 갈 수 있었던 길을, 내일은 할 수 없고 갈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한 발 한 발 함께 걸어가고 있는 길이다.  둘 다 불 같은 성격으로, 자주 툭탁거리는 모녀로 지내는 형편이라, 사랑이나 희생 같은 거창한 단어보다는 단지 인간으로서,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예의를 지켜 서로의 앞날을 지켜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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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는 속초에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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