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가로이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지곤 한다. 스산한 연말이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밤에는 홀로 앉아 가슴이 먹먹했다. 힘들고 비감한 한 해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또 한 번의 전기가 되는 날들이었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조기 퇴직한 후, 맑은 공기와 한적한 곳을 찾아 10여 년을 타지에서 살았다. 남의 집을 빌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쾌적한 환경, 맑은 공기가 우선이어서 대부분 한적한 곳이었다. 어머니가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는 형편이 되어 함께 살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한적한 곳이었으므로 절대적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드나드는 형제들이 불편해했고 집안에서 오래 생활하는 어머니의 고립감도 깊어갔다. 거리와 마음은 비례한다.
마음을 먹고 십 수년 만에 그간 세를 주었던 도심의 내 집으로 돌아왔다. 1년 전 이맘때의 일이었다. 내 집도, 주변도 많이 변해 있었지만, 내 집이 주는 편안함과 오래 살던 동네가 주는 익숙함과 친근감이 좋았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생업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맹모삼천지교는 2천 년의 지혜다. 아침저녁으로 보고 만나고 느끼는 모든 것이 우리의 일상을 리드하고 우리의 일상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근교의 한적한 곳에 살 때는 나의 일상도 한가롭고 조용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오후에는 근처에 있는 산으로 산책 겸 작은 등산을 했다. 주변에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서 옛날의 위용은 잃었지만, 아름답고 수려한 산이었다. 도서관, 산, 교회로 이루어진 일상의 동선처럼 나의 정신세계도 조용하고 맑고 한가했다.
지금 나는 홍대 앞에 산다. 도서관, 지하철, 서점, 내가 좋아하는 혹은 필요한 모든 것이 500m 반경 안에 있다. 거리에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지금은 코로나로 한가하지만 평소에는 각국의 젊은이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가정집보다 상가나 상업시설이 더 많고 동네 사람보다 외지인이 훨씬 많으며 보통 때는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인 동네다. 그래서 장점도 단점도 많다.
연초에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AI 관상이 잘 맞는다고. 좋은 말을 들어서인지 상대의 기분이 좋은 것이 느껴졌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밝아졌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다. 신년의 덕담을 그녀는 인터넷상의 AI에게서도 들은 것이다.
돌아보면 삶의 고비마다, 자의적이었던, 등을 밀려서였던 나의 선택이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힘든 길만 골라서 걸어왔을 가? 사춘기 때부터'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 시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중요한 결정을 하고 가지 못할 길을 바라봤던 때의 그 설레면서도 희미하게 슬픔이 배어 있던 감정의 순간들을.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숲으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지요.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우리의 삶은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 안에 신의 섭리가 있다고 믿는 것은 종교를 가진 신앙인으로 서의 성찰이다. 삶의 고비마다 내가 내렸던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이 지금의 나의 삶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