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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Dec 20. 2020

나의 새해 계획

할머니지만 열심히 살고 싶어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시간은 간다. 코로나로 고생하며 모든 사람이 언제 이 한 해가 가나 했는데 어쨌든 연말이다. 코로나는 가지 않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우리를 방구석으로 몰아 대지만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팬더믹은 어쨌든 시간의 문제이고 우리는 결국 방법을 찾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신년 계획을 짠다. 무슨 원대한 목표나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내년 한 해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생활할 가하고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끄적거려 본다.  나이가 들수록 내 삶에서 가장 귀한 가치를 가진 것은 시간이다. 얼마 남았는지 모른다는 자각이 실감되는 나이이기도 하고 하루, 한 달, 한 해가 정말 빨리 간다. 나이 든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 줄 2개를 가로 세로로 그어 면을 4면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각의 면에 일, 영적 생활, 취미, 운동을 써넣은 다음 작은 세부사항들을 적는다. 그냥 단순하게 계속하고 싶은 일, 새로 해보고 싶은 일을 적는다. 그렇게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내년 한 해 내가 보낼 일상이 그려진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빨리 끝나서 생업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고, 좀 더 열심히 읽고, 쓰고,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도 적어놓고, 해보고 싶은 유튜브도 적어본다.

젊은 시절에도 나의 계획 세우기는 왕성한 의욕과 창의력으로 해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연례행사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실행력이 없던 나는 그저 일 년 내내 ‘신년 계획’을 바라만 보면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계속하곤 했다.  왜 나는 계획만 세워놓고 실행을 하지 않을 가?  고민해본 적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체념이 되면서, 그래 계획은 계획일 뿐이야. 꿈만 먹고살 순 없어.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먹고사는 일이 중요해. 그러면서 집과 직장을 오가다, 가끔 시간이 나면 그래, 뭐라도 해야지 하며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한 달 정도 버티던 일이 3달로 연장되다가, 6개월에서 1년 그리고는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래서 느낀 것 하나, 언젠간 되는구나. 한 발씩이라도 쉬엄쉬엄 계속 가면 언젠간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것처럼. 재능이 없어서 남들처럼 빨리 뭔가를 해내지는 못해도 계속하다 보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못했다. 우리 시대 남들 다 만점 맞는 수능 턱걸이 체력검사에도 떨어질 정도로 체력도 약했다. 그래도 운동이 하고 싶었다.  TV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테니스나 수영을 하는 것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워낙 운동신경도 체력도 없어서 시작해도 진전이 없었다. 그래도 나의 새해 계획에는 언제나 운동 목록이 하나 이상 들어있었다. 그렇게 해서 테니스, 수영, 볼링, 달리기, 요가, 필라테스들의 운동을 나이에 맞춰 해오고 있다. 여러 가지를 오래 해오다 보니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이 향상된 것을 느낀다. 어느새 신체 감각이 뛰어나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기도 한다. 최근엔 자전거에도 입문해 또다시 가슴이 설렌다.

할 일을 미루고 회피하는 게으름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의 이론이 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이 있는 ‘나는 왜 항상 결심만 하는 걸 가’의 맥고니걸과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의 팀 페리스의 책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미룸과 회피, 일상적 게으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 주요인으로는 인내력과 의지력의 부족, 동기부여의 불충분을 들고 있다. 


나의 경우는 체력의 결핍이 주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허약한 체력은 쉽게 바닥나는 의지력과 인내심 그리고 소모성 ‘멘탈’을 동반한다. 멘탈은 말 그대로 정신력의 분야인 듯 하지만, 정신력과 신체적인 것뿐 아니라 영적이고 감성적인 모든 것의 집합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한 멘탈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 건강한 감수성과 지적능력의 복합적인 결과이다.


나이가 든 요즘은 체력도, 능력도, 시간도 제한이 있는 나이다. 현실을 자각하여 상당히 실용적이고 구체적, 현실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의 신년 계획이 실천 가능성을 무시한 꿈 보따리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결국은 해낸 것처럼, 지금도 약간 허황되지만, 소박한 작은 꿈들도 하나씩은 들어있다. 할머니에게도 꿈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의 지난한 지루함과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이겨내려면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믿는다.

살다 보면 어두운 밤길을 홀로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상황이다. 다행히 처음이 아니라, 힘들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결국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어둠 속이어서 반딧불은 더욱 밝고, 하늘의 별은 더 크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A4용지 한 장에 담긴 나의 작은 소망으로, 2021 새해는 내게 의미 있고 기대에 찬 한 해로 다가온다. 내년 봄 아름다운 제주 해안도로 자전거 일주의 꿈이 기다리고 있는 나는 그런대로 온기 있는 세모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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