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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Feb 01. 2021

일요일 6 AM 줌(Zoom) 미팅

할머니 북튜버 되기

얼마 전 ‘북튜브'(유튜브에서 책 소개하는 채널)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즈음인가 ‘저 눈밭에 사슴이’라는 라디오 소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 동안 그 유명했던 드라마 작가 김수현 씨의 데뷔 작품이다. 진부한 계모 스토리를 탱글탱글 톡톡 튀는 대사로 몰입감 있게 풀어낸 원작을 낭독한 라디오 소설이었다. 그때의 깊은 인상이 남아있던 나는 낭독의 매력에 이끌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잠시 방송반 활동도 했다. 책도 낭독도 좋아하니까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북튜브를 시작했지만, 나름 윤기 있었던 목소리도 이제는 빛이 바래지고, 발음도 어눌하다는 것을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나이가 들면 혀의 근육(혀의 뒷부분에 있는 끈 같은 부분)도 빠져서 발음이 부정확해진다고. 처음에는 아니 이럴 수가 하면서 실망과 회의에 시달리다가, 지금은 좀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아니 나아질 수 있어하고 강변하고 있는 중이다.


홀로 고독하게 하는 작업이고 처음이라, 누군가에게서 피드백받는 일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인 것 같다. ‘카톡’으로 알리고 응원을 요청했지만 피드백은커녕, 어설프다는 등의 시큰둥한 반응에 기가 죽었었다. 우리 집안에 가훈은 딱히 없지만 ‘편하게 살자’와 ‘너 자신을 알라’ 정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팩트에 충실하고 서로의 일상에 무심한 편이다. ‘쿨’하다기보다, 아무 생각이 없는 쪽에 속한다.


결국 초보 북 튜버(유튜브에서 책 소개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 올리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한 달에 만원을 내고 임무를 완수하면 돌려받고 못하면 모았다가 모임의 경비로 쓴다. 젊었을 때는 독불장군 스타일이어서 이런 것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웬일인지 거부감이 없어졌다. 서로 비슷한 처지이므로 소통하고 응원하며 함께 나아가는 분위기가 도움이 되고 있다.


때때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미팅이 필요한데, 멤버들이 20대부터 다양한 연령 대라 모두 현업에 바쁘다. 해서 일요일 새벽에 요즘 핫 하다는 ‘줌’으로 온라인 미팅을 했다. 새벽 6시이고 모두 동성이라 편한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쌩얼’에 잠옷 차림으로 참가했다. 침대에서 베드 테이블 놓고 하는 미팅은 처음이라, 참신하네~ 하며 마음 편히 참가했다. 막상 미팅이 시작되자 화면에 참가자들의 얼굴들이 떴다. 오 마이 갓! 다른 사람들은 탱글탱글 상큼 발랄 젊은이들 인 데다가 모두 적절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중에 웬 부스스하고 초췌한 한 할머니가 보였다. 다행히 목도리를 두르니 얼굴만 보여서 잠옷인 티는 나지 않았다. ‘안구테러’도 처음에만 좀 그렇지, 나중엔 그러려니 하겠지 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일요일 이른 새벽시간임에도 1시간 넘게 열의에 차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응원하며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 미팅을 끝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새벽은 바쁘다. 젊은이들은 지금의 직장이나 직업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며, 더구나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데 대한 결핍과 허기를 메꾸기 위해 제2, 제3의 커리어(일명 부캐)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장년층 또한 젊은 시절 사느라 바빠서 채울 수 없었던 숨겨온 꿈을 향한 열정으로 무언가를 시작한다. “나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난다”, “하버드 새벽 4시 반”등의 책이 인기가 있고, 온라인 상에서는 ‘모닝 미라클’ 추종자들이 새벽부터 시끌벅적하다. 심지어 우리 팀의 한 사람은 새벽 3시에 동영상을 올린다, 그것도 매일. 평생 10 투 4의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온 나도 요즘은 새벽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겸손해진다.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갈 길은 먼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배울 것은 많은데 허둥대다 시간이 다 간다. 마치 슬로 모션처럼 모든 것이 굼뜨다. 그러다 보니 휘청거리며 갈지자 걸음으로 갈 때도 있다. 젊은 시절이라면 당장 집어치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인내심이 생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짐도 조금씩 가볍게 느껴지고 발걸음도 조금씩은 빨라질 것을 안다.


나이는 공짜로 먹는 것이 아니다. 올해 101세의 김형석 교수가 60대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한 뜻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행복은 성취나 소유의 조건 충족보다는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더 중요하다. 부족해도, 좀 뒤떨어져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편하게,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나이다.


방안에 키우는 작은 식물들도 어떤 것은 빠르게 자라고, 또 다른 것은 너무 느리게 자라서 죽었나 하고 새삼 들여다보는 경우도 있다. 아름답지만 금방 지는 꽃도 있고 수수하지만 왠지 마음이 가는 페페나 아이비 종류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불 같던 젊은 날들, 자신만만하고 패기 넘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오래된 TV의 저해상도 화면처럼 무미건조하고 둔한 사람이 되었지만, 대신 자유롭고 편안한 나이가 되어 그때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과 평화로움에 잠기곤 한다.


비록 지금은 오랜 기간 코로나로 모두 지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길을 찾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씩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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