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그래도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 이것은 무라까미 하루끼의 책 제목이다. 하루끼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여러 취미생활과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심취해서 해오고 있는 마라톤에 대한 얘기가 많다. 나는 하루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 제목은 마음에 든다. 인간에게는 꿈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에도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고 긴장했던 마음을 쉬게 해주는 ‘휴식과 치유의 시간’ 이 필요하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채워진 놀이 시간은 우리가 다시 일상의 잡사로 돌아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열정을 되돌릴 수 있다.
나도 즐겁게,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열심히 일하고 실컷 노는 것이 내 일생의 목표라면 목표였다. 명예나 돈, 권력 같은 거창한 것 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전력투구해 그것을 얻으려는 노력은 애초부터 없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고, 초등학교 시절에 당시로는 심각한 병이었던 결핵을 앓았으며(나의 고모 중 한 분은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갓난아이를 남기고 죽었다), 평생 건강 때문에 결정적인 시기마다 발목을 잡혔던 나로서는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 유일한 목표였다.
늙어간다는 것은 삶의 정점을 찍었던 젊은 날의 큰 자아에서 점점 작아지는 작은 사람으로,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닐 까.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부터 술래잡기까지 많은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제 젊은 날의 준엄하고 다망했던 일 들에서 해방되어 새로이 진심으로 즐거운 나만의 놀이를 시작할 수 있는 시기를 맞았다.
요즈음 문화센터나 주민센터를 가보면 취미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 요리, 자수부터 무용, 댄스, 어학 등 그 종류도 다양해서 좋은 시설에서 적은 비용으로 마음껏 여가생활을 할 수 있다. 취미는 즐거움이며 자유로운 것이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실익을 따지지 말고 그저 시작해 보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면 된다.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면 즐거움이 줄어든다. 개방적이고 호기심에 찬 마음으로, 기꺼이 바쁘게 살자.
한 가지를 꾸준히 해서 남보다 훨씬 잘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해보는 재미도 있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량이 많은 취미도 있고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두세 가지 종류의 취미를 다양하게 즐기는 것이 나는 좋다. 지난날 두 번의 골절 사고를 겪으면서 운동을 할 수 없을 때도,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즐길 수 있는 취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엔도 슈샤쿠는 그의 수필집 ‘나를 사랑하는 법’에서 자신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저것 다해보며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종교소설 ‘침묵’으로 노벨상 후보로도 오른 작가지만, 젊은 시절에도 댄스도 하고 수년간 아마추어 연극단을 이끌기도 한 당시로는 파격적인 작가였다.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하든 격식을 버리고 허심탄회하게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파괴적이거나, 향락 적이지 않은 선에서 평소의 규격화된 일상에서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능을 7가지로 분류하고 설명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인간의 지능을,
언어 지능
논리, 수학 지능,
공간 지능,
신체 지능,
인간 친화 지능,
음악 지능
자연친화 지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그 방면의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분류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영적 지능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지적 지능과 정신적 지능은 다르다. 때로 훌륭한 지식과 합리적 논리를 가졌음에도 왠지 지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나 정신적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지적 지능과 정신적 지능은 별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지능을 몇 가지로 나누든, 그 모든 지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천재들은 말 그대로 하늘이 준 능력이므로 예외적인 존재이겠지만. 우리는 공원에서 달리기를 할 때 음악을 들으며, 넘어지지 않게 주위를 살피고,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도 한다. 달리기를 즐기면서 신체 단련뿐 아니라, 여러 지능을 함께 훈련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지능을 동시에 가장 많이 쓰면서 훈련할 수 있는 분야가 놀이인 것 같다.
나는 테니스, 볼링, 골프, 수영, 달리기, 요가, 필라테스 등, 거의 모든 운동을 다양하게 해 왔고, 꾸준하게 요리를 배우고, 한국 무용도 배워본 적이 있다. 그중 한국 무용은,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그만두었지만(약간 ‘몸치’에 속한다), 언제나 동경하는 마음이다. 어린 시절 지금의 ‘예술극장’이 ‘시공관‘으로 불리던 시절 보았던, 전통의상의 화려한 군무는 흥겨움의 극치였다. 나는 특히 북춤을 좋아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내 가슴을 울리던 그 거대한 북소리!
요리, 요가 그리고 여행
최근 5년간, 짧은 기간이지만 간간이, 한식 중식 일식 조리 및 몇 개의 베이킹 강좌에 등록해 배워왔다. 시간이 될 때마다, 짧게는 2달, 길게는 6개월 코스를 등록해 왔다. 항상 그랬듯, 열심히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첫째는 요리하는 즐거움, 둘째는 먹는 즐거움 셋째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다양하고 새로운 식자재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리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요리 또한 여러 지능뿐만 아니라 나이 들면서 쇠퇴해가는 시각, 미각, 청각 등 여러 감각들도 즐기며 복합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랜 투병 기간을 거치면서 운동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과 비례하여 우리의 신체는 시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수술 후 한 달쯤 후에 요가를 시작헀다. 요가는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춰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나는 수술 후의 내 몸의 상태를 부분 부분 체크해 보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요가는 유연성을 길러주고 혈액순환을 도와주며 근육 훈련과 더불어 심적/정신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매트 한 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전천후 운동이다. 나이가 든 사람도 좋지만 스마트기기로 인해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더욱 좋다. ‘연금보다 근육을 저축하라’는 요즘 트렌드에 맞추어 얼마 전부터는 근육 운동이 좀 더 많은 필라테스로 옮겨갔다. 요가나 필라테스의 단 한 가지 아쉬움은 좀 더 일찍 시작했었더라면 하는 마음뿐이다.
요즘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주 여행을 한다. 지구에는 더 이상 신비한 장소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여행한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하고, 평소에는 무감각했던 자신의 일상을 함께하는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영감을 주곤 한다. 외국 기관에 오래 근무한 덕에 일찍부터 외국의 여러 곳을 여행했다. 출장도 잦았지만 일이 끝난 후엔 항상 휴가를 내어 개인 여행을 하곤 했다.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나만의 여행을 고집스럽게 진행했지만, 허겁지겁 짧은 일정에 언제나 갈증을 느꼈었다. 은퇴 후에는, 젊은 시절에 갔었던 곳을 편안하게 다시 찾아다니며 그 시절의 향수에 젖어보는 것이 또 새로운 기쁨이다. 내게 여행이란 언제나 우리가 순례자처럼 떠도는 삶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오늘은 이곳에, 그러나 내일은 다른 곳에.
코로나 이후에는 여행이 급격히 감소하리라는 비관적인 예상이 지배적이지만, 나는 그래도 사람들은 여행할 것이라는 데 한 표! 여행은 본능이니까!
즐겁고 경제적인 ‘셀프’의 세계
요즘 유튜브는 나의 공부방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혼자 힘으로 만들거나 해낸 여러 활동기록들이 넘쳐나는 ‘셀프’의 세계를 가장 즐긴다. 그중에는 값비싼 전문가들의 노하우도 많다. 이전에는 비싼 값을 치르고도 공개되기 어려웠던 비법들을 비용 없이 무제한으로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전문가의 시대에서, 서툴지만 경제적이고 무궁무진한 즐거움의 셀프 시대가 열렸다. 비싼 인건비, 각종 공구의 발달, 전문가적인 기술의 공유가 쉽게 이루어지면서 온 국민 1인 1기의 시대가 열렸다.
오래된 주택에 살면서 이곳저곳 손 볼일이 많았던 나는 자연스레 셀프의 세계로 입문한 후, 대문 수리, 옥상 방수, 테라스 꾸미기 등을 내 손으로 해내며 점점 취미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다. ‘셀프’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무엇이든 배워서 내 힘으로 해보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즐거움의 세계다. 은퇴 후 시간이 여유로운 형편에서는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재능이 있고 적성에 맞으면 제2의 직업이나, 부업으로도 확장이 가능한 취미생활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 셀프의 제일 요건은 눈높이를 낮추고,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완벽은커녕, 남이 알까 봐 숨기고 싶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 것, 단언컨대, 두 번째에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잘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가 아니면 세 번째 에라도.
결코 이 즐거운 취미를 포기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