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 행어

3화. 새로운 전쟁터

by 헬렌



새 직장 첫날.

같은 외국은행이지만 다른 은행 서울지점.

더 큰 지점.

더 많은 기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로비에 들어섰다.

'이번엔 다를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김민지 과장님이시죠?"

인사팀 직원이 나를 맞이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인사팀 박서연이예요. 오늘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박서연 씨가 말했다.

"김 과장님, 유명하세요."

"... 네?"

"해외연수 다녀오셨다며요? 나이도 어리신데."

"아, 네..."

"다들 기대하고 계세요. 실력 있는 분 오신다고."

기대.

그 말이 부담스러웠다.


3층 기업여신부.

문을 열자 익숙한 광경.

넓은 사무실에 6-7명의 남자들이 양쪽으로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김민지 과장입니다."

인사를 했다.

부장이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저는 박성철 부장입니다."

악수를 나눴다.

그의 손이 차가웠다.

"우리 부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 인사하세요!"


"김 과장님, 여기 앉으세요."

창가 자리.

짐을 풀며 주위를 살폈다.

남자 직원 여섯 명.

모두 30대 초중반.


그리고...

박서연 씨를 땨라 매니지먼트, 지점장, 부지점장에게 인사한 후, 일반 총무, 회계, L/C 파트등 다른 관리부서들도 다니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 여자가 다가왔다.

"저는 관리부서 최지원 대리예요."

또래로 보였다.

단정한 차림.

밝은 미소.


"아, 안녕하세요. 김민지입니다."

"미혜 동창이에요. 제가 내일 점심 사 드릴게요. 환영 의미로!"

아! 좁은 동네였다. 외국은행들은 전국에 20여 개 정도, 전부 시청, 명동, 2-3km 반경 안에 모여있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꼭 같이 먹어요."

그녀의 열정이 과했다.

왜일까?


오후.

박 부장이 나를 불렀다.

"김 과장, 업무 시작하기 전에 팀 소개 좀 할게요."

"네."

"여기 심민호 대리, 강준석 대리, 이동욱 사원..."

한 명씩 소개받았다.

모두 친절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피곤함이 스며있었다.




며칠 후 점심시간.

최지원과 근처식당에 앉았다.

업무일에 관한 얘기가 끝난 후, 그녀가 물었다.

"근데 김 과장님, 집안이 어떻게 되세요?"

갑자기?

"... 왜 물으시는데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친해지고 싶어서!"

나는 포크를 내려놨다.

"저희 집은 평범해요."

"아버지는 뭐 하세요?"

침묵.

나는 최지원을 똑바로 봤다. 누군가가 그녀의 아버지가 의사라고 귀띔을 해주었는데.. 누구였지?

"개인적인 질문이네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좀 예의가 없었네요."

최지원이 손을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

경쟁심인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같은 업무이었지만, 전 직장보다 2-3배 큰 규모여서 업체도 여신규모도 훨씬 크고 다양했다.


2달쯤 지났을 때, 외국인 매니저가 나를 따로 불렀다. 그가 컴퓨터를 켜고 몇 번 만지작거리자, 화면에 종이 전표 같은 것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우리가 쓰고 있는 종이로 된 신용 분석 시트 같았다. 그런데 그가 그곳에 숫자를 타이핑하니, 나머지 숫자가 바뀌며 계산이 저절로 되었다


그것의 이름은 비지칼크였다-(현 엑셀의 전신). 본점에서 새로운 신용분석 자동시스템을 도입하라고 왔는데, 나보고 먼저 시작해 보겠냐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다들 처음 보는 거라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아서, 경력이지만 신입인 나에게 떨어진 일이었다. 말을 마친 후 그는 내 눈치를 보았다. 현재는 종이에 타이핑에서 쓰고 있는 여신 분석 시트가 커다란 계산기 안에 들어있는 셈이었다. 숫자만 넣으면 자동으로 계산돼서 숫자가 바뀌었다.


나는 이 똑똑한 기계가 금방 마음에 들었다. 해 보겠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여신 신용 분석 시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효율성에 놀란 사람들이 다들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동화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직장에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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