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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Nov 29. 2024

네가 원하던 포도맛 치약이잖니

아들의 또 다른 능력

아침부터 닦고 닦고 또 닦고,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했다.

개운하다.

내친김에 화장실 청소까지 완벽하게 했다.

깨끗해진 거울과 세면대, 변기, 왠지 모르게 속이 다 후련하다.

따듯한 물 한 잔 마시며 잠깐 쉬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배를 채우고 양치하며 깨끗해진 세면대에 만족스러웠다.

또다시 따듯한 차를 앞에 가져다 놓고 한 모금 마시며 쉬려던 그때, 알림이 울린다.

하...

사랑하는 아들 녀석이 또, 나와야 할 시간에 안 나오고 미리 하교를 했다.

정문 앞에 서성이던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안 받는다.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위해 최대한 빨리 학교로 향했더니 세상 신나게 눈을 갖고 놀고 있다.






한 시간 빠른 하교, 아들에게 또다시 정규수업과 늘봄수업의 시간을 알려주며 이해를 시키지만 오늘도 흘려듣는 눈치다.

2학년이 되면 좀 더 크겠지, 그때는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확실하게 설명을 해주며 이해시켰다.

이해.. 했겠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초코칩이 씹히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하여 사주고, 오는 내내 먹으며 오던 아이의 입술은 라면송을 부르던 추억의 캐릭터, 마이콜을 연상케 한다.

새까맣게 발려진 입술 주위를 닦아주며 잔소리가 나온다.

"아들아, 언제쯤 깔끔히 먹어줄래? 오늘은 초코를 먹었으니 양치는 제대로 해야 하겠지? 꼼꼼히 하자 오늘? 하는 김에 혀도 잘 닦아야 하고, 또.."

"알겠어요~ 알겠어요~ 잘하고 있어요~!"

희한하다.

잔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던 아이는 늘 함께하던 포도맛 치약을 보고는 양치가 하고 싶단다.

"아들, 갑자기? 어차피 이따가 저녁 먹을 건데?"

"네, 지금 할래요, 찝찝해요~!"

"그래~ 깨끗하게 해~^^"

손만 씻고 빠져주려는 찰나, 자기가 양치하는 걸 봐 달란다.

그래,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겠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구석구석 잘하는 아들, 기특하게 웃어 보이고 칭찬을 해주니 좋다고 오버한다.

혀도 닦겠다고 열심히 행동을 취하더니 헛구역질을 하는 녀석, 자기도 놀랐는지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고 웃는다.

굳이, 굳이 안 보여줘도 되는 혀 닦는 시늉을 또 한 번 하는 아들을 말려보지만 기어코 보여주더니 먹었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게워낸다.

...........=..=^

코 평수가 자꾸 넓어지는 것이 꼴밤이라도 한 대 콱! 때려주고 싶지만 애써 참아보는 나다.

오전에 그렇게 청소하며 뽀얗게 뽀얗게, 때 빼고 광낸 세면대가 까맣게 까맣게, 물이 들었다.






역시나 가성비 떨어지는 녀석, 먹으면 먹는 대로 내려 보내더니 오늘은 올려 보내는구나.

"엄마, 치약맛이 이상해서 그래요!"

"응, 아니야~ 변명은 하지 않아요~ 늘 하던 치약이고 네가 원했던 포도맛이야."

자존심 상한 아들 녀석이 똥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고놈 참, 누굴 닮아 고집이 센 건지, 그렇다 치자.

"입 헹구고 얼른 나가~ 엄마가 정리하고 나갈게-..-"

조용히 나가주면 좋겠고만 문 앞에서 등 뒤에 대고 끝까지 포도맛 치약은 토할 것 같다고 노래를 부른다.

저걸 확.

샤워기로 따듯한 물을 틀어 세면대를 씻어내지만 손을 안 댈 순 없다.

또다시 구석구석 닦아내며 정리하는 도중에 하마터면 내가 토할 뻔했다.

오늘은 저녁 먹이고 소화가 될 때까지 양치는 미루다가 잠들기 직전에나 시켜야겠다.

깨끗해진 세면대를 보니 평소에도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아들의 능력으로 까맣게 덮인 세면대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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