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Oct 22. 2023

전업주부는 책을 사지 않잖아요.


첫 책을 쓰고 출판사에 투고했을 때 한 출판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원고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요, 전업주부들은 육아서면 모를까, 책을 잘 사보지 않아요. 도서관에서 빌려 보죠. 그래서 상업적인 면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워서 전업주부들을 위한 책은, 저희는 내지 않아요."


당시 저의 위치가 전업주부와 워킹맘을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전업주부를 위한 책도 아니었건만 그런 출판사의 피드백을 받으니 위축되더군요. 내 책의 독자층은 있겠지만, 그 독자층이 구매층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책을 내긴 어렵다는 거예요.


책이 과거처럼 신성시되지도 않고 독자보다 작가가 많아지는 시대라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 또한 하나의 상품일 뿐이라지만, 이렇게 드러내 놓고 '많이 팔릴 책만 만들 거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과연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없어졌어요.

J.D. 샐린저 같은 작가야 원고를 숨겨놓고 안 줘서 출판사들이 원고를 얻을 방법이 없을까 전전긍긍했다지만 그런 작가야 정말 한 세기에 몇 명 있을까 말까고 대부분은 출판사에서 내 책을 내줄지, 안 내줄지, 안절부절못하는 처지 아니겠어요.


그때 전 이런저런 독서 모임에 발을 걸치고 있었기에 경쟁적으로 책을 사는 전업주부 엄마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안 그래도 출판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초보 작가의 입장에서 그런 출판사의 평은 절대적인 의미로 들렸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무슨 작가를 하겠어. 내세울 대단한 이력이 있거나 파워블로거(지금은 인플루언서겠지만)쯤 되어야 할 수 있는 거지, 글 하나로 승부를 내는 시대가 아니잖아. 투고를 하고 한껏 들떴던 마음이 출판사의 한 마디에 맥없이 쪼그라들었어요.


나중에 제 책을 낸 출판사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은 판단이 전혀 달랐습니다.


"30, 40대 주부들이 책을 안 산다고요? 애들 그림책이나 문제집 사러 와서 자기 책도 많이 삽니다. 그건 서점에 가서 몇 시간만 앉아 있어도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그 출판사가 뭘 모르네요. 그리고 작가님 책이 반드시 전업주부만 읽는 책도 아니고요."


우연히 대형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나서 물어봤을 때도 같은 반응이었고요.


"글쎄요? 그건 그냥 그 출판사의 생각인 것 같아요. 주부들도 책을 많이 사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책을 내고 보니 독자들은 각자 자기 삶에 자유롭게 대입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나와 연령대와 상황이 비슷한 사람들은 물론, 20대는 자기 엄마를 생각하며, 남편은 부인을 떠올리며, 놀랍게도 각자 공감할 지점을 알아서 잘 찾아냈다. 어떤 20대 젊은 남자분을 만났는데 저의 두번째 책 <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을 읽었을 때, 자기가 예전에 했던 '베이비 시터' 아르바이트 경험이 떠올라 몰입하며 읽었다고 하더군요.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책 속 화자가 느낀 공허함이나 정체성을 찾고 싶었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 너무 다가왔다고.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첫 책 <엄마가 필요해>를 계약했을 때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출간이 현실로 다가오자 두려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내봤자 아무도 안 읽어줄 것 같고, 혹평에 상처나 받을 거라는 생각에 출간을 코앞에 두고 출판사에 '책을 내고 싶지 않다'고 소심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상 사람들 앞에 발가벗겨진다고 생각하니 그저 숨고만 싶었습니다. 다행히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습하고 책을 냈지만요.


첫 책을 출간한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내 이야기 같다', '나도 표현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을 글 잘 쓰는 누군가 대신 써준 것 같다.'는 평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든, 그렇지 않든 말이지요. 책 속 여행 지도를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활자 속 길을 잘 찾아가는 독자들의 능력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니 내 글을, 내 책을 누가 읽어줄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물론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고 초조해하거나 그저 유명인이 되기 위해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앞서면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고요. 언급했듯이 독자들은 능력이 뛰어납니다. 작가의 성급함이나 욕심이 스며든 글은 아무리 포장을 잘 해도 독자가 금방 알아차리고, 그 순간 독자에게 어떤 공명을 일으키기는 힘들어져요.


작가로서 책의 판매지수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판매지수가 어쩔 수 없이 책에 대한 평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여전히 책은 물리적인 상품으로서의 가치만 있는 건 아니기에, 작가와 독자 간 마음의 변주가 이루어지는 매개이기에, 독자는 오늘도 책을 읽고 작가는 매일같이 쓰는 것 아닐까요.









이전 05화 악플, 악플, 악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