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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22. 2023

실전 글쓰기-에세이 쓰기 사례

김연수 작가님이 <소설가의 일>에서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도처에 잔인한 진실이 널려 있는데, 문학은 그 잔인한 세상의 진실을 끊임없이 새롭게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거라고. 짧고,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장르가 아니라, 같은 말도 늘 새롭게 구현하는 예술 장르란 거지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가는 효율과 효용을 따지기보다는 '이를테면 말이지요' 하면서 누구나 뻔히 아는 것을 때론 자세하게, 때론 새롭게 써내는 사람이라고 했고요. 시쳇말로 '가성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 투입 대비 최대 산출을 원하는 사람은 소설을 쓰기 보다는 정보 전달의 글을 쓰는 게 맞을 겁니다.


효율을 따지지 말아야 하는 건, 에세이 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다음과 같은 일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그렇게 극적인 사건은 아니에요. 아마 여러분도 찾아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이 정도 기억에 남는 일은 있으실 거예요.


"지난번 시댁에 갔을 때 시아버지가 철갑상어 이야기를 했다. 이웃집 김 씨가 철갑상어를 연못에서 키우는데, 김 씨가 잠깐 서울 집에 올라간 사이 시아버지가 철갑장어 노는 걸 구경하러 가셨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시니 그럴 만했다.

문제는 시아버지가 구경 다녀 온 후로 철갑상어가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거다. 집에 와서 CCTV를 확인한 김 씨는 시아버지가 몰래 잡아먹은 게 틀림없다며 시아버지에게 꼬치꼬치 물어본 것은 물론, 동네에 자기가 의심한 게 사실인양 소문까지 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결백을 증명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다른 곳에 설지된 CCTV 덕에 수달이 잡아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일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썼으니 한번 읽어주세요.


철갑상어란 이름만 들었을 때는 상어 중에서도 갑옷을 두른 듯, 꽤나 단단하고 무서운 놈일 줄 알았다. 시아버지 이웃인 김 씨가 자기 집 연못에서 철갑상어를 키운다고 했을 때 영화에서 공포음악과 함께 상어 출몰의 신호로 등장하는 꼬리지느러미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동그란 연못에서 상어 꼬리지느러미가 불쑥 나오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철갑상어는 이름만 상어일 뿐, 실제로는 상어와 아무 관련이 없고 애완용 철갑상어는 최대한 커봤자 50cm 정도라고 한다. 백악기부터 살았다고 하니 오래된 어종의 위엄은 있겠지만 실제로 사람에게 해를 가할 만한 물고기도 아니었고 민물에서도 사는 만큼 바다 생물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김 씨가 키우던 철갑상어 네댓 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일이었다.


“아 글쎄, 김 씨가 잠시 서울 집에 가고 며칠 집을 비웠을 때 그 집을 지나다 철갑상어가 노는 걸 구경하려고 잠깐 보러 들어갔었어. 알다시피 여긴 다들 산속에 집 짓고 사는 처지니 담장도 없고 마당에 현관도 없잖아. 서로 아는 사이들이니 그런 거 별로 개의치 않고. 잠깐 보고 나왔을 뿐인데, 그게 CCTV에 찍혔나 봐.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서울 갔다 와보니 철갑상어가 몽땅 없어졌대. 나보고 철갑상어를 몰래 잡아먹었다는 거야.”


시아버지는 억울해서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아침상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시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우면서도 어쩐지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동물을 좋아하는 시아버지는 집 근처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다람쥐와 친구가 되어 도토리도 약속된 장소에 놓아준다. 멧돼지 어미가 새끼들까지 데리고 와 힘들게 농사지은 옥수수를 알뜰히 파먹고 가도 말로는 아깝다 하시지만, 야생 멧돼지가 굶주리지 않게 된 걸 한편으론 다행으로 여기는 분이다.


그런 시아버지니 철갑상어가 신나게 물을 가르며 노는 걸 보고 싶어서 남의 집 마당에 잠깐 들어가신 게 이해가 된다. 무슨 영문인지 철갑상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엉뚱한 오해를 받고 그게 동네에 소문까지 퍼졌다 하니 속상하실 만하다. 그러나 도회지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난데없는 철갑상어 실종 사건도 어쩐지 정겹게 느껴진다. 이웃이 놀러 왔다 간 이후 돈이나 패물이 없어져서 신고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신문에 오르내리는 마당에, 철갑상어를 갖다가 팔았다는 것도 아니고 잡아먹었다는 오해를 받는 게 그나마 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밝혀졌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CCTV도 분석한 모양이다. 놀랍게도 철갑상어를 잡아먹은 건 수달이었다. 청정 지역의 계곡이라 뜻밖에도 수달이 살고 있었다. 낮에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어두워진 다음 쏜살같이 연못으로 와서 철갑상어를 냅다 먹어 치웠다. 갖고 가서 먹었는지, 그 자리에서 먹고 증거를 없앴는지, 자세한 사건의 전말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수달의 짓으로 밝혀져 시아버지는 누명을 벗었고 김 씨는 괜한 오해를 한 걸 사과하러 왔었다고 한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로 범인이 밝혀지니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재미있는 단막극 같다. 복잡한 도시 속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감만으로 꽉 찬 우리 생활에서 느껴보기 어려운 여유다. 시골 생활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동물이 끼어들 여지가 있고 그 덕분에 약간은 불미스러울 수 있는 사건도 서로 웃어넘기고 수달하고 유무죄를 다툰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된다.


반려동물을 키우기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아파트에서 어떻게든 동물을 키우는 것도, 사람과 사람만 부대끼는 도시 생활의 팽팽한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하고 싶어서일까. 집이 좁다고 투덜대면서도 베란다 한쪽을 식물에게 다 내주고 화초 가꾸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사람 아닌 다른 자연물과, 사람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속내를 나누고 싶기 때문일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 말이 사람만 아름답다는 뜻은 아닐 거다. 자연에서 사람만 뚝 떨어져 자기네끼리만 뭉쳐 사는 도시 생활에 지쳐 주말마다 자연을 찾아 캠핑이다, 힐링이다, 하는 것만 봐도 사람은 자연 속에서 다른 개체들과 조화를 이룰 때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는 동식물과 뒤엉켜 사는 시부모님의 전원 속 삶이 부러워 보인다. 철갑상어, 멧돼지, 옥수수, 다람쥐, 도토리…. 산속에 자리 잡은 시댁을 둘러싼 단어들이다. 시댁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어쩔 수 없이 고지서, 카드값, 아이 성적표, 병원, 학원 등이었다. 먼 훗날, 은퇴하면 시골에 집 짓고 살자던 남편의 말을 흘려들었는데 오늘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짧고 가벼운 글이지만 한 편의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일단 철갑상어가 독자에게는 낯설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정보를 서두에 간략히 넣었습니다. 이런 건 자료조사를 해서 보충해야겠지요? 다만 자연과학 책이 아니니까 글의 흐름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간단히 넣어야 합니다.


사건과 인물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필요한 만큼 주고자 노력했어요. 정보란 건 너무 과다해도 가독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생략돼도 감정 이입이 어려울테니까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건지, 그리고 그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체(시아버지)는 어떤 인물인지, 그 정보를 적절히 담고자 했습니다. 구체적인 대사도 넣고요. 그리고 도시의 삶과 자연 속의 삶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경수필이니까 너무 무겁게 흐르지 않도록 유의하면서요.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주변에서도 이 정도 글로 풀어낼 에피소드가 많이 있지 않으신가요? 감정과 마음을 움직이는 에세이. 효율을 따지기 보다는 문학이란 장르의 기본 속성을 곱씹어 보면 더욱 쉽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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