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동학대인가 의심도 했어요. 아침에 한번, 밤에 한번, 아이의 긴긴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거든요. 특히 밤에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지루하다 못해 나중에 걱정되어 정말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핸드폰을 드는 시점에야 간신히 소리가 잦아들었어요. 신생아라면 영아 산통이나 어떤 이유로 그렇게 오래 울 수 있겠지만, 아니, 서너 살까지도 아이들이 가끔 이유 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 엄마 속을 태우겠지만, 짐작건대 아기는 대여섯 살은 된 것 같았어요. 집 앞에 유모차도 없었고, 제법 큰 애들이 타는 세 발 자전거가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매일같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제가 살짝 집 앞에도 가봤거든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런데 아이가 몇 살인지, 이렇게 오래 울 수도 있는 나이인지, 혹시 멀게만 느껴지는 아동학대 현장을 제가 외면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어 한 행동이니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고할까 말까 망설인 건, 그 절차가 번거롭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고발하는 데 따른 부담을 느끼거나,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니었어요.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었다가도, 문득 우리 아이도 다 크도록 오래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나를 신고한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 내 아이를 지나치지 않고 걱정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마땅하겠지만, 아마 그 시절 저는 그러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저는 어땠을까요? 온통 우울한 그림자만 도처에 가득했습니다. 직장도 그만두고, 낯선 곳에서 혼자 출산과 육아의 짐을 지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빌었던 초보 엄마였어요. 산후 우울증을 혹독하게 앓았던 것 같은데, 그게 우울증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감기몸살 참듯이 참으면 되는 줄 알고 아기를 재우고 밤마다 울면서 잠들었던 초보 엄마였어요.
아기를 잘 키우고 있는 건지 끝없이 의심하고, 아기가 어디 잘못되지 않을지 한없이 불안하고 그랬습니다.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던 그 시기에 누군가 나를 아동학대하는 엄마로 의심하고 신고했다면, 어쩌면 더 무너졌을 거예요.
당신은 저와 전혀 다른 존재일지 모르는데 왜 자꾸 당신의 상황이 짐작되고, 마음 쓰이고, 걱정되는 걸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당신을 마주쳤다고 했어요. 사실 제 짐작이 틀리기를 바랐거든요. 아이들이 들려준 답은 예상대로였어요.
“아줌마가 표정이 없었어. 멍해 보였어”라고 말하는데 내 안에서 뭔가 덜컥 주저앉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시절의 나와 똑 닮은 누군가가, 바로 위층에서 나의 과거를 재현하며 몸부림치는 것 같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토록 괴로웠나 봐요. 가끔 어른들끼리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도 들렸어요. 어쩌면 그것마저 똑같나요.
공부를 마치고 늦깎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편은 갑자기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에 산후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견디는 아내를 차분하게 돌아봐주지 못했어요. 연고 없는 곳에서 아기를 키우느라 1시간, 아니 단 30분의 자유시간도 없이 지내는 아내가 몸도 마음도 조금씩 으스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서투른 젊은 부부는 물리적인 수고에 치이고,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리며 연애할 때는 한 번도 안 해봤던 격렬한 말싸움까지 하기 시작했지요.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잠시 숨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었어요. 아기가 깨서 자지러지게 울면 얼른 달려가서 업고 안고 얼러야 했거든요.
화가 난 남편은 현관문을 쾅 닫고 훌쩍 나가기라도 하지만, 아기 젖을 물려야 하는 저는 그럴 여유도 없었지요. 마음도 가끔씩 환기해야 하는데 늘 집에 있다 보니 저는 우울한 공기에 완전히 갇혀 버렸어요.
잠든 아기를 내려놓지도 못하고(내리는 즉시 깨니까) 엉거주춤 업고서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어요. 문득 눈을 들어 지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내가 뭘 그리 잘못해서 이토록 외롭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걸까, 생각했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된장찌개 한번 끓여본 적 없이 공부하고 직장 다니느라 바빴던 제가 갑자기 육아와 살림을 떠안고 매일 새로운 도전을 하고, 매일 앞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그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아무도 잘한다고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이 사회는 출산과 육아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아기 엄마는 가정 안팎에서 홀대받기 일쑤입니다. 육아에 정성을 들이면 구시대적인 여성 취급받고, 어린 아기를 두고 나가서 일을 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잖아요. 이래도 저래도 엄마를 손쉽게 비난만 하지, 응원해 주는 목소리를 찾기가 힘들어요. 엄마 자신이라도 스스로를 도닥여야 하는데 엄마란 존재는 아이가 콜록 기침 한 번만 해도 내 탓 같고, 내 잘못 같고 그러니 쉽지 않지요.
20년이 흘렀지만 어린 아기 키우는 당신과 나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출생률 낮아지는 현상은 그저 걱정거리일 뿐, 정작 최전선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을 빈약한 근거로 혐오하거나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도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고요.
유치원 방학을 한 이후로 울음소리가 부쩍 줄어든 걸 보니 요즘은 아이가 잘 지내고 있나 봐요. 아침이면 유치원 가기 싫어서, 밤이면 잠들기 싫어서, 그토록 울었던 걸까요?
서로 움직이는 시간대가 달라서인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기억해 주세요. 가까운 곳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오늘밤 편히 잠들기를 기도하는, 당신이 통과하고 있는 현재를 회한 어린 과거로 둔 어떤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요. 나는 못 들어본 말이지만 당신에게는 마음 깊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도요. '잘하고 있어요. 정말로 잘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