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거다.
“엄마, 나 오늘 금연 서약서 썼어!”
“뭐?”
“담배가 몸에 해롭대. 그래서 우리 모두 평생 담배를 안 피우겠다는 서약서를 썼어.”
“너희 반만?”
“아니, 오늘 그거 갖고 무슨 행사하는 거 같던데. 아마 전교생이 다 썼을 걸?”
흡연으로 인한 건강상 피해를 줄이자는 의도는 알겠지만 아직 흡연과는 꽤 거리가 멀어 보이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굳이 서약서까지 받는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니까 애초에 ‘어린이 흡연’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교육 당국자들의 굳건한 의지가 발로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높아지는 청소년 흡연율에 위기의식을 갖고 예방 교육을 강화하는 걸로 생각하면 될까?
<힐빌리의 노래>를 보면(힐빌리란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지역에서는 13세만 되면 흡연은 물론 마약을 하는 아이들이 대다수라고 하니 이런 곳에서는 서약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초등생들의 흡연은 아직까지는 극히 드물고 일반적이지 않다. 청소년기가 오기 전에 흡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줄 필요는 있겠지만 ‘서약서’라는 형식은 뭔가 불편하다. 흡연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이 있거나 아주 약간이라도 흡연할 의지가 있다면 모를까, 아이들이 모두 잠재적 흡연 가능자도 아닌데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를 되뇌게 하는 게 군사문화나 전체주의 문화 잔재같이 느껴진다고 하면 유난스러운 반응일까.
생각해보면 우리 어릴 때는 ‘새순결카드’ 같은 것도 썼다. 순결을 지키자는 서약 같은 거였다. 순결이 ‘티 없이 깨끗한 마음’을 의미한다지만 ‘처녀성’을 의미하는 맥락도 있음을 감안할 때 유독 여학생들만 순결카드를 쓰게 했던 조치는, 돌이켜보면 실소를 터지게 한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아직까지도 일부 여학교에서 ‘순결’은 물론 ‘고운 몸매’, ‘어진 어머니’를 급훈으로 삼는다고 하던데 사회는 눈이 핑핑 돌아가게 빨리 변하는데 학교에는 이 변화의 물결이 반영되는 게 참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서약서라는 건 한 개인이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로 쓰는 건데, 이걸 단체로 쓰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학교에서 단체로 예방 주사 맞던 시절에나 있던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의 딸은 학교에서 자살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문제 때문에 모녀가 마음고생을 했다. 취지는 좋다. 자살을 하지 않고 내 생명을 소중히 지키겠다는 거다. 하지만 그 서약서의 어떤 문구가 예민한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건드렸다. 직접 본 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살을 하는 건 내 생명을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결과고,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어떤 어조의 문장이 들어갔다고 한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서약서에 사인하기를 완강히 거부했고 담임 선생님은 그깟 이름 석자 쓰는 게 뭐가 어렵냐며 아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 자기 소신이 명확한 아이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서약서에 강제로 사인하는 거에 큰 거부감을 느끼며 담임 선생님과 대립했고, 아이들 전원에게 사인을 받아서 빨리 ‘제출’ 해야 하는 선생님은 아이를 까다로운 별종 취급하며 공격했다. 결국 이 문제로 담임 선생님과 사이가 벌어진 아이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좋자고 하는 일들인지 모른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내용도 아직 존재하고 설혹 취지나 내용은 좋더라도 진행 형식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하라면 해라’, ‘생각하지 말고 따라라’, ‘따지지 말고 응해라’라고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닐까. 가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쓴 육아서를 보면 기존의 학교 제도나 교사상을 디폴트로 설정해놓고 어떤 비판적 접근도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을 받는다. 막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그렇게 디폴트로 설정할 만큼 학교 풍토나 관행이 우리 어릴 때랑 많이 달라진 느낌이 안 든다.
한쪽에서는 교권 추락이니, 학생인권조례가 아이들 다 망친다느니 말이 많지만 학부모로서 체감하는 학교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요소가 많게 느껴진다. 짧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기에 교사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고 선생님들도 많은 고충이 있는 걸 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학교라는 권위 앞에서 아무리 센 척해봐야 약자다. 개인별로, 상황별로, 특수한 예외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교사도, 학부모도, 교육 당국자도 서류에 사인받는 요식 행위에 급급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성장할지 더 많은 배려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엄마, 좀 이상하긴 했어.”
“뭐가?”
“난 담배 냄새 진짜 싫어하거든. 담배 피우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면 냄새가 나한테 올까 봐 뛰어서 피해 갈 정도로.”
“맞아, 너 엄청 싫어하더라.”
“그런 내가 담배를 안 피우겠다고 약속하는 게 좀 뭐랄까, 이상하고 이해가 잘 안 됐어. 선생님이 사인하라니 그냥 했지만 말이야.”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선생님이 사인하라고 하면 하는 것. 수긍도 납득도 안 되지만 무언가를 무기력하게 따라야하는 순간. 안 그래도 어른이 되면 숱하게 느끼는 것 아닌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삶의 태도를 구태여 배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아이의 흡연 서약서 때문에 30년 전 새순결카드까지 떠올리며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