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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02. 2019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요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만큼 엄마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일이 있을까요? 웬만큼 강심장인 사람도 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마음이 무너질 겁니다. 이건 아마 겪으신 분들은 더욱 공감하실 거예요.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는 ‘부모들이 요즘 아이를 너무 약하게 키우는 것 아니냐, 우리 어릴 때도 다 따돌림 있었다, 유난 떠는 부모가 문제다’, 쉽게 말하지만 막상 내 아이 문제가 되면 이게 얼마나 일상에 큰 균열을 일으키는지 실감하신 분들 있을 거예요.     


아이가 자라면서 크고 작은 따돌림을 완벽하게 피해 가긴 사실 어렵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엇비슷한 경험이 생기지요. 이때 아이 곁에서 엄마가(사실 아빠도 해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아이에게 더 편안하고 아이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엄마인 경우가 많기에 주어를 엄마로 한정하는 걸 양해 바랍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아빠나 부모로 바꿔 읽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 짧은 경험 속에서 깨달은 바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는 학교 폭력 전문가도 아니고, 짧게나마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현직 교육 종사자도 아니기에 제가 말씀드리는 건 공인된 정설보다는 경험담이나 속설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오히려 듣기 어려운, 여과 없는 생생한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써 봅니다. 전문가 견해와 상반된 부분도 있을지 모르니 각자 판단하시길 부탁드리고요.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요."


엄마가 먼저 동요하는 내색을 하면 안 됩니다 


만약 아이가 따돌림을 당해서 힘든 상태라고 호소하면 그때 어떤 조치를 취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이가 말한 어떤 상황만 듣고 엄마가 얼굴색이 변하면 아무렇지 않던 아이도 겁을 먹습니다. 제 아이도 생일 파티를 둘러싸고 약간 소외된 적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 3학년도 어립니다. 제 아이도, 저희 아이를 소외시킨 아이도 어렸을 뿐이에요. 그런데 전 아이가 친구에게 굉장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에 분개해서 그 일을 심각한 얼굴로 다른 엄마와 상의했습니다. 아이가 옆에 있는 채였어요. 참 조심스럽지 못했지요. 별 생각이 없던 아이였는데 자기가 뭔가 되게 큰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했습니다.      


아이에게 캐묻듯이 묻거나 섣불리 상대 아이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걔가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라며 속사포처럼 질문하며 취조하듯이 물으면 아이가 불안해합니다. 자기가 뭔가 실수를 한 건가 걱정을 하고요. 또 아이의 몇 마디만으로 아이의 친구를 비난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 아이뿐 아니라 내 아이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오늘 자기를 괴롭혔을지언정 아직 자신에겐 친한 친구인데 엄마가 나쁜 아이 취급하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괴롭힘이나 따돌림이 명백하다고 해도 상대방 엄마한테 직접 연락하지 않습니다     


이건 엄마와 아이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할 텐데요. 상대 부모에게 연락해서 잘 해결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아이가 우리 아이를 이렇게 괴롭히고 따돌렸어요’라고 했을 때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한번 아이랑 이야기해 볼게요’라고 바로 말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이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 포함해서요. 거의 첫마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입니다. 그나마 ‘아이와 이야기해보겠다’는 분들도 대부분 차후에도 인정하시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엄마한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교활하고 나빠서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이 말을 들은 엄마는 ‘오해’ 임을 더욱 확신하고 자기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보다는 우리 아이가 예민하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담임 선생님께 상의드리는 걸 추천합니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그래서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고 말씀드리는 거지요. (물론 그전에 팩트 체크 잘 하시고 이게 정말 부모가 과민한 건지, 명백한 괴롭힘인지 충분히 알아보시고요.) 만약 상대 아이 엄마랑 안면이 있거나 친한 사이라면 많이 불편해지실 겁니다. 개중에는 ‘나한테 말하지, 아는 사이에 어떻게 그래? 우리 애가 선생님한테 어떻게 보이겠어?’ 따지는 분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엄마들끼리 이런 문제로 부딪히는 것보다는 학교를 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소신 밝히고 사이가 멀어지면 여기까지가 인연인가 보다 하세요.     



사안이 심각하다면 증거를 수집해 놓으세요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심각하다면 전문가를 찾으세요. 무료 상담 전화도 많습니다. 117은 교육부와 경찰청 등에서 학교폭력을 상담해 주는 번호고 1588-9128은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에서 학교 폭력과 관련된 상담을 해줍니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학교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담해주는 기관이 많습니다.

이런 기관과 상담하며 필요한 증거를 모아 놓으세요. 아이의 일기도 됩니다. 몇 월 며칠에 누가 어떻게 괴롭혔는지 소상히 기록해 놓습니다. 증거가 수집되면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지, 다른 방안을 선택할지 담임 선생님과 상의해 보세요. 이때 선생님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선생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가끔은 있으니 담임 선생님이 어떤 성향인지도 알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어설프게 가해 학생들과 만남을 주선하지 마세요     


제가 아는 아이는 친했던 친구들 여럿에게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주선으로 가해 학생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는데 이 자리가 어이없게도 피해 학생을 ‘따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성토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을까요? 여러 명이 한 명을 터니까 그 피해 학생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변변히 대응도 못 했다고 해요. 가해자들이 다수고 피해자가 혼자일 때는 만나는 자리 자체가 부담스럽고 무서울 거예요. 자기를 방어하기 힘들었을 거고 오히려 더 상처만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노한 어떤 분들은 화해의 장으로 잘 이끌어 가실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기에 신중하셨으면 합니다.      


어떤 후회를 할지 선택하세요     


아이가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 학폭위나 기타 절차를 통해,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려도 이후 학교 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어요. (다 그런 건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트러블 메이커로 소문이 나서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기사에도 자주 나잖아요. 하지만 그런 후유증이 무서워서 좋게 좋게 무마하고 지나가면 부모 입장에서는 그것도 후회가 됩니다. 그때 좀더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사과도 확실히 받았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게 미안하고 한스러운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후회는 남을 수 있는데 아이랑 허심탄회하게 상의해서 어떤 쪽으로 후회할지 결정하세요. 만약 아이가 이런 상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태라면 부부가 같이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제가 커져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받을 비난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폭위 열고 변호사까지 불러서 ‘일을 크게’ 벌였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은 피해자와 부모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학교로 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수군대던 아이들도 곧 잊어버리고 다시 잘 지내더라고요.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은 부분 해결하기도 하니까 소문이 무서워 소극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네가 처신을 잘했으면 안 당했을 일이잖아!


제일 중요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당한 따돌림에 너무 감정 이입되고 가슴 아픈 나머지, 아이에게 '네가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했다' '너의 이러저러한 면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훈계하려 듭니다. 어찌 보면 가해 학생들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행동입니다.

성인도 사회적 관계가 미숙한 사람이 많은데 사회적 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실수하기도 하고 이런 요인 때문에 따돌림을 초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여학생들의 경우 험담이 사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험담을 했는데 그게 당사자 귀에 들어가 복수의 따돌림이 시작된다거나!)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따돌림당할 만한' 아이는 없습니다. 그건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따돌리는 아이들이 잘못된 겁니다. 따돌리는 아이들 또한 아직 완성된 인격체가 아니니 교육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사회와 학교의 몫으로 남겨두고 일단 부모로서 제일 중요한 일은 상처 받은 내 아이에게 공감하고 내 아이를 위로하고 믿어주는 겁니다.


전학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런저런 시도가 다 안 통하면 아이 환경을 리셋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가능하다면요. 대신 인근 학교는 안 되고요. 기왕 전학 갈 거면 기존 학교 아이들의 통학권과는 상관없는 먼 곳으로 이사 가는 방법이 좋습니다. 피해자가 이사 가는 건 참 분한 일이긴 한데 때로는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아이한테 '너 때문에 이사 가는 거야'라는 부담은 금물입니다. 자연스러운 계기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게 낫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마음너무 아프지만 아이들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도 합니다. 힘든 사건을 겪고 오히려 아이 마음이 단단해진 경우도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더 잘 하는 아이가 되기도 하고요.  모든 터널에는 끝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가슴앓이하고 있을 부모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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