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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20. 2019

자식 자랑은 만 원 내고 시작하세요!

초등 1학년 때 시작한 반 모임 엄마들과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모임을 지속한다는 한 엄마가 있었다. 아이들 어릴 때부터 만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본다는 것이다. 보통 한 두 해는 수시로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애들 데리고 놀러도 가면서 관계를 다지지만, 대부분은 흐지부지되는데 10년이 넘도록 모임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지 물었다.


"간단해. 우린 자식 자랑하려면 만 원 내고 시작하라고 해!"


세상에 남 자랑 듣고 싶은 사람이 을까? 자랑을 들으면서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끈끈한 관계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랑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랑은 A를 취한 사람이 A를 취하지 못한 사람에게 하기 때문이다. 사과 50개를 가진 사람이 사과 100개를 가진 사람들을 앞에 놓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한 개도 없거나 몇 개 간신히 손에 넣은 사람 앞에서 50개를 갖고 우쭐대는 것이다. 그러니 자랑을 말하고 듣는 풍경은 애초에 편안하기 어렵다.




일찌감치 취직한 나와 달리 친한 친구가 취직 못해서 안타까웠을 때는 그의 뒤늦은 합격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 면접관 질문에 얼마나 재치 있게 답변했는지 늘어지게 자랑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몇십 분이고 기꺼이 들으며 과도한 리액션도 해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연달아 시험에 탈락해 낙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구나 그걸 상대방이 알고 있다면, 취직했다며 자랑하는 전화를 마음 편히 받아주기 힘들고 개중에는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렇듯 자랑은 주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한테 하고, 그러보니 미묘한 갈등이 생긴다. 자식 자랑은 엄마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변수다. 나 또한 자식 자랑을 무한정 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가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한때는 내 마음이 옹졸한 탓이라 여기고 공연한 죄책감도 느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기본적으로 자랑이 갖는 구도와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


일단 애들 어릴 때 제일 많이 하는 자랑은 '우리 애 책 많이 읽어요'다. 나 또한 이런 자랑을 한 적도 있는 마당에 누굴 날 세워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서경식 교수는 <시의 힘>에서 자식에게 늘 책을 강조하는 건 온 세상 마이너리티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물려줄 재산이 없는 중산층이 학력이라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거라고, 과도한 독서교육 열풍을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정확히는 독서교육의 열풍이라기보다 독서를 열심히 해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은 부모들의 욕망일 거다) 어쨌거나 자식에게 책을 손에 쥐어주려고 안달하는 부모 모습은 비판 이전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나 포함)


아이가 좀 큰 다음에는 성적 자랑이다. 대놓고 하기 뭐하면 밤새워 학원 숙제를 해서 걱정된다는 하소연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굳이 묻지 않은, 우등생만 받는 유명학원 이름이나 상위 레벨이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운 반 이름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애들 어릴 때 상장이나 표창장 등을 카톡 프로필에 올리는 건 애교로 봐줄 만한데 중학생이 된 자식의 성적표까지 은근하게 말하고 다니는 건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하긴 내 자식이 온갖 상장을 휩쓸고 전교에서 논다면 어쩌면 나도 더 너그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우등생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성적에 관한 한 평범한 아이들이다. 어릴 때 책 잘 읽던 애들이 커서 그저 '책 잘 읽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기도 한다. 평범하거나 학업에 관해 뚜렷하게 성취를 올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다수고 그 대다수의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알게 모르게 속을 태운다. 상대의 그런 사정이나 상황을 다 아는데 자랑한다는 건 기본적인 학부모들 심리 지형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거나 모르는 척 하는 거다.



또한 자랑으로 공유되는 내용도 지나치게 결과 위주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양보심이나 배려심, 사람과 인생에 대한 어른스러운 생각, 공부가 아니더라도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열심 하는 모습 등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자랑은 별로 귀담아듣는 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애 반장 됐어' '우리 애 표창장 받았어' 같은 이야기는 기억하고 자랑으로 인정해 주지만 '우리 애는 자선냄비를 지날 때 꼭 자기 주머니라도 뒤져서 돈을 넣더라고' 같은 이야기는 새겨듣는 이가 드물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전교 1등 애가 그런 행동을 하면 '역시 00 이는 다르네'하고 우수한 성적과 더불어 빛나는 인성까지 갖춘 자타공인 모범생으로 한번 더 우러러본다.


천편일률적인 학업 성취도 자랑 말고, 너는 못 가진 거 나는 가졌다는 자랑 말고 내 아이, 네 아이 가릴 거 없이 각자의 모양과 속도대로 잘 크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자랑을 듣고 싶다. 성적이나 학업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다. 안전망이 미비한 사회에서 '학력'이란 무기라도 쥐어주고 싶은 부모들의 불안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게 인생의 행복이나 성공적인 진로를 보장해주는 게 아님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아이들이 컸을 때는 우리가 순위를 매겨놓은 직업 같은 건 많이 사라져 있을 거라고 많은 책에서 예견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적인 이유 말고라도 우리가 사는 현재가, 아이들이 사는 오늘이 행복하도록 부모들의 생각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우리 애는 허브 키우기에 참 관심이 많아!

"우리 애는 캘리그래피로 방을 꾸며놨어요!"

"우리 애는 좋아하는 가수 얼굴을 똑같이 따라 그려요!"

"우리 애는 주말이면 오후 2시까지 푹 잘 자요!"

"우리 애는 친구를 차별하지 않아요!"


이런 자랑. 기대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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