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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09. 2019

엄마 독서모임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

수년간 엄마들의 독서모임에 참여도 하고 이끌기도 하면서 제일 힘든 점은 지정도서를 선정하는 일이다. 모임원들이 자기 색깔이나 취향이 뚜렷하지 않으면 차라리 리더가 선정하는 대로 따라가서 문제가 없지만 각자의 선호도가 너무 다양하면 의견을 모으기 힘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매번 자유도서만 읽으면 독서 편식을 극복하기 힘들고 공통의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기도 힘들다.     


가끔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선정할 때는 더 어렵다.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무시, 더 나아가 폭력과 범죄까지 낱낱이 밝힌 책을 볼 때면 놀라기도 하고(예를 들어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에서 나오는, 살해당하는 미국 여성 중 50%가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서라는 통계 같은 것 등),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한 여자들을 가부장제의 어리석은 부역자 취급하는 어떤 책들은 전업주부들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한 회원이 말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어요.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여자한테 불합리한 요소가 참 많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당장 이혼을 결심할 만큼 남편과 애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인형의 집> 노라처럼 집을 뛰쳐나가거나, 아니면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아직 어린애들을 놔두고 그럴듯한 직장을 얻거나, 제 상황에서 그 어느 것도 할 수가 없고요.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자꾸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으로 생각이 복잡해져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는 좀더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A 모임은 여러 인문학 도서를 오랜 기간 읽어 와서 독서 내공이 상당한 그룹이었고, B 모임은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모임으로 취향도 연령대도 제각각이었다.     


A 모임에서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사회적 지향점에 대해서 논의가 오갔다.     


“이 책은 결혼과 여성, 육아와 일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조명해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문학 작품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완성도 높은 창작 작품이라기보다 한 편의 다큐를 본 느낌이랄까요?”


“80년대생 엄마들은 이전의 세대와 달리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지만, 막상 결혼한 이후에는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좌절감을 많이 느꼈죠. 출산과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력 단절녀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을 짚어주고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해준 것 같아서 후련하긴 합니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느끼고 스쳐 보낸, 불합리한 장면들을 모아서 전체적으로 보게 해 준 측면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개인의 파편화된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어떤 의제로 설정할지에 대한 고민은 좀 부족해 보입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들은 여성에게만 불행을 초래하지 않고 남성들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되지요. 많은 페미니즘 책에서 지적하듯 여성에게 굴레를 씌우는 사회에서는 남성도 한 인간으로 온전히 성장하기 힘들잖아요? 여자는 얌전하고 조신해야 한다, 남자는 강하고 세야 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남녀 모두를 병들게 하죠. 그런 사회에서는 ‘얌전하고 조신한 남자’나 ‘강하고 센 여자’ 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니까요. 페미니즘의 본령이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간해방을 기치로 하는데 이런 고민까지 다룬 책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B 모임에서는 좀더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저는 전업주부지만 그다지 공감이 가지는 않았어요. 사회가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전업주부라고 해서 이렇게 불쌍하게 표현된 게 읽으면서 내내 편치 않더라고요.”


“워킹맘인 저는 오히려 많이 공감했어요.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아이들 키우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기분이 들고 언제 그만둘지 불안하거든요. 아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일찍 끝나는데 봐줄 사람이 없어요. 제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있으라고 하기엔 어리고, 학원 돌리는 건 안 내키고 사실 걱정이 많아요.”


“저는 제 얘기인 줄 알았어요. 저도 딱 이런 수순을 밟으면서 결혼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시댁과 남편, 사회에서 예상치 못한 홀대를 받는 기분이라 참 답답하고 힘들었거든요. 우리 사회는 주부가 하는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너무 폄하하는 것 같아요.”


“아이는 각자 개인이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꾸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을 사회가 이러네 저러네 하는 게 저는 좀 이해가 안 가네요. 제가 이미 아이들을 다 키워서 입장이 다른 지도 모르겠지만요.”


“제 아들은 고등학생인데요, 저는 오히려 아들 입장에 감정 이입이 되어 그런지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학교에서도 여자애들이 공부도 더 잘하고, 자기 것도 잘 챙기던데요? 어리숙한 우리 아들이 여자애들에게 양보하고 손해 볼 때가 많아서 걱정인 저로서는, 너무 한쪽의 시각에서만 본 게 아닌가 싶던데요.”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들 때문에 힘들다고 푸념한 회원의 말도 맞긴 하다. 엄마들 독서 모임에서 ‘만국의 주부들이여, 이혼하라’와 같은 극단적인 구호로 대동 단결할 것도 아니고, 각자가 처한 가정 환경이나 성장 경에 따라 여성 문제를 대하는 시각은 너무 달라서 결론을 내기 쉽지 않다.      


여성이 불합리한 사회를 향해 연대해서 싸우기 힘든 건, 그 문제가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파고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경 유학생인 나혜석도 가정과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지니는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었지만 결국 남편과의 불화 끝에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사회가 변했다지만 여전히 혼자 맞서다가는 만신창이가 되기 십상이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 경우의 수가 생기는 만큼 누구랑 연대해서 싸우기도 힘들다.     


지난한 싸움인 데다 이미 가부장제라는 울타리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상 페미니즘이니 뭐니 그런 거 기웃거리며 속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자기 위치를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태도는 유독 페미니즘을 논하려면 가부장제에 오염되지 않은 무결점(?) 여성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그럼 넌 취직해서 돈도 벌면 안 된다’고 하거나,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자연을 훼손한 고속도로를 네가 이용하는 건 모순이니 걸어다녀’고 한다면 억지라고 할 것이다. 현실의 어떤 문제를 지적하는 누군가가 그 현실 밖에서 사는 건 아니기에,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의 주장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살기는 어렵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온 주부가 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려면 최소 이혼이라도 한 후에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전업주부 또한 그렇다. 가부장제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스스로 직장을 그만 둔 전업주부들은 페미니즘 같은 건 자신과 관계 없다고 외면하거나, 아니면 자신은 감히 페미니즘을 언급할 위치가 아니라며 위축되어 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쓴 스테파니 스탈은 묻는다. 일을 그만 둔 전업주부들은 페미니즘의 발전에 역행하는 선택을 한 걸까? 악착같이 직장에 남아 있지 못하고 육아를 선택한 여성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성의 권리 신장을 방해한 까?


이 책에 등장하는 세실리 베리는 하버드대 로쿨을 졸업한 흑인 여성이다. 두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그녀는, 흑인 여성으로서 전문 직업인으로 남아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일과 가정 사이에서 괴로웠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페미니즘의 끝이 이혼이나 구직, 승진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렇게 결론이 나는 어떤 경우도 있겠지만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사회적 지원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 직업인지, 본인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기타 개인이 처한 여러 상황이 다 다른데 획일적인 결론을 내기는 힘들다.




엄마들의 토론을 지켜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중구난방이 되는 토론을 어떤 방향으로 정리할지 생각도 하다가 회원들간에 '맞아, 나도 그랬어요' 서로 감탄사가 나올 때는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주부로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모색도 해본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문제는 ‘진위의 문제보다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현실을 살지만 해석도 대안도 각기 다르다. 가부장제에 발 딛고 사는 기혼 여성들은 어떤 삶을 꿈꿔야 할까. 아직도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힘든 사회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니, 이미 선택을 끝낸 다음에도 계속되는 갈등과 질문은 어떤 출구를 찾아야 할까. 불편해도 계속 바라보고, 고민하고, 길을 찾는 건 결국 본인 몫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연대의 지점을 함께 다져가고 싶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실천지 못한다고 해서, 생각조차 포기하는 사람은 안 되겠다고 애쓰는 중이다. 시간을 쪼개 엄마들의 독서모임을 이끌거나 참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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