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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Nov 17. 2019

필요한 건 100만원짜리 전집이 아니라 당신의 30분

출판 시장이 어렵다고 다들 아우성인데 출판사 관계자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유아 책 시장은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근래 몇 년간 ‘책 육아’ 열풍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어릴 때부터 책을 읽히는 분위기가 책 시장에도 반영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은 많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마 청소년기가 되면 실질적인 학업 부담이 많아지면서 책과는 멀어지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현실이 도서 시장에 반영된 결과라고 짐작합니다.     




실제로 제 아이가 중학생 정도로 크고 보니 책을 권하기가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는 전집으로 쏟아지던 책들이 있었는데(저는 전집보다는 단행본을 추천하는데 이 이야기는 차후에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청소년이 볼 만한 국내 도서는 일단 절대적인 양이 적습니다.      


바로 세계고전이나 한국 근현대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중간다리 역할을 할 만한 도서가 좀더 풍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바로 읽기 힘든 초등 고학년이나 중등 저학년이라면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를 먼저 읽어 본다던지, <해리 포터>나 <헝거 게임>처럼 대단히 흥미진진하면서도 작품 내적 완성도뛰어난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좋다고 봅니다.      


국내 청소년 소설은 예전보다 양적으로는 그래도 성장하고 있지만 소재와 주제가 엇비슷해서 저희 아이는 ‘맨날 똑같은 이야기야’라고 푸념하곤 했답니다. 물론 뛰어난 작품도 있어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소설은 이야기 전개의 긴장감과  메시지 전달이 고루 뛰어나다고 생각되지만 이런 작품이 아주 많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그건 청소년 소설을 성인 소설 진입을 위한 전 단계 정도로 치는 문단 분위기도 영향을 주겠고 해외에서는 청소년 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린츠 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도 존재하는데 국내 문단에서는 청소년 문학상의 권위가 아직 충분히 서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봅니다.    

 

사설이 길었는데요, 어쨌거나 부모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데 공을 들이지만 막상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청소년 필독서 리스트’ 같은 것 말고 부모 입장에서 내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권하고 싶어도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빠지기 일쑤라 독서가 중단되기도 합니다.    

  

어릴 때 그림책을 읽어주면 재미있게 듣고 초등학교 때는 알아서 책을 읽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책과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불안해집니다.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이 학습에서도 뒷심을 발휘하고 인생에서도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을 텐데, 집에 와도 책 한 장 펼쳐보지도 않는 아이를 보노라면 불쑥불쑥 화도 납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의 바탕에는 책이 알아서 아이를 잘 키워줄 것 같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는 건 아닐까요. 마치 부모 대신 책이 인성도 바르고 공부도 잘하고 사회생활마저 잘하게 만드는 아이로 키워줄 것처럼 말이죠.     

 


저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뜻도 잘 모르는 <달과 6펜스>를 한낮부터 방구석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가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봤나 봅니다. 엄마가 왜 이리 어두운 데서 책을 읽느냐고 불을 켜실 때야 시간이 많이 흐른 걸 알았으니까요. 엄마도 요즘의 엄마들처럼 책 많이 읽는 저를 내심 자랑스러워하셨지요. 빠듯한 살림에도 책이나 전집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고 어디 가면 ‘얘가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제가 책을 많이 읽은 건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자기 딸이 왜 책 속 세상으로 도망가는지도 잘 모르고 책 읽는 걸 뿌듯해하엄마를 보는 건, 어린 마음에도 뭔가를 속이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죄책감 때문에 거북한 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속이는 마음이 빨리 발각되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도 들었지요.     




책을 많이 읽어서 제가 공부를 잘했을까요? 사회생활을 잘했을까요? 영어나 국어 독해는 확실히 속도도 빠르고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어요. 싫어했던 수학은 끝까지 앉아서 푸는 집중력이 제일 필요했던 과목인데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 민감한 사춘기 소녀가 그런 집중력을 발휘하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친구 관계 또한 불안정한 가정 분위기에서 지낸 탓인지 상대가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해서 결말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많이 나아졌는데, 그건 책 때문이라기보다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관계가 가정 밖에서라도 많이 생긴 덕분일 겁니다.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책을 좋아하니 책을 쓰는 사람이 됐겠지요. 책의 효용성도 믿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도 책을 많이 읽혀요. 하지만 책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건-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어느 정도 큰 다음부터라고 생각해요. 특히 자녀에게 책이 부모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책 육아라는 말은 각자가 어떻게 구현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단어의 조합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는 부모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큽니다. 하루 30분이라도 부모가 아이 눈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애정을 주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아이가 힘들어할 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며 아이를 넉넉하게 품어야 합니다. 혹시 오늘도 전집에 거액을 쓰는 게 부모가 들여야할 시간과 노력을 책이 대신해줄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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