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본의 아니게 3등 열차를 탄 적이 있다.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한 낮의 더위가 48도를 웃도는 사막을 굳이 느리게 달리는 완행열차였다. 열차에 올라 3시간 반 내내, '기차' 라는 말만 했지 '3등'이라는 말은 없었던 창구 직원을 원망했던 그런 여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의자와 객차 사이의 문은 불에 탄듯 찢어지고 검게 그을려져 있었고,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깨진 채 바닥에는 어딘가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굳이 창밖으로 목을 내밀지 않아도 바깥 풍경이 깨진 유리창을 비집고 흘러 들어왔다. 휘날리는 모래 바람에 입을 가려는 와중에도, 내 얼굴을 흘끗 보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시커매진 옷가지를 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수십개의 낯선 눈동자가 기차 안의 유일한 외국인인 나에게로 쏠려있었고,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은 채 꺼내들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더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켜버렸다.
유일한 동아시아인에 유일한 외국인.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것만 같던 그 때, 제복을 갖춰 입은 한 남자가 "Are you ok with this train?" 라고 물었다. 내 이마의 주름을 본 것이 틀림없다.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다 한참 만에 "I'm enjoying" 이라고 대답하자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내 표정과 너무 상반된 대답이어서 였으리라.
세 시간에 걸쳐 나를 모래덩어리로 만든 그 느린 기차가 재밌는 추억이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두근거림이 설레임임을. 나에게는 두려움, 당신에게는 설레임. 빠르기만 한 세상에서, 점점 설레는 일도 줄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