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산시성
223년. 유비가 죽었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똥을 싸놓고 죽었다.
동맹국이었던 오의 침공으로 관우가 죽고 형주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한 장비까지 비명횡사한 상황에서, 유비는 제갈량을 비롯한 모두가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킨다.
한중왕에 올라 조조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이긴 했지만, 원래 유비는 함부러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많은 신하들, 심지어 유장의 부하들까지 합세해 촉이라는 거대한 밥상을 차려줬을 때도, 몇 번이나 마다했던 유비다. 그러나 동맹국의 갑작스런 배신과 의형제의 죽음, 그 두 가지가 평생을 절제하며 야망을 숨긴채 살아왔던 유비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갈량 없이 전투에 나선 유비는, 이릉대전에서 철저하게 패배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는다.
단순히 유비가 죽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촉은 8만의 병사와 더불어, 마량, 황권, 풍습, 부동 등 앞으로 촉을 지탱해야 할 수많은 인재들을 모조리 잃는다. 당시 위의 황제였던 조비는, 유비가 없는 촉한을 사실상 없는 나라로 치부했고, 이때부터 천하는 사실상 위와 형주를 얻은 오의 싸움이었다.
촉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력이 쇠하자 보란듯이 각지에서 반란이 일었고, 그 모든 짐이 승상 제갈량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되었다.
제갈량의 북벌이 그토록 위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유비가 죽은 뒤 첫번째 북벌이 시작되기 까지 고작 4년 만에, 남만을 비롯한 각지의 반란을 모두 진압하고, 바닥까지 추락한 촉의 안밖을 돌보며 전쟁을 다시 치를수 있는 생산력을 확보했다. 마침내 227년,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유선에게 올리는 출사표를 시작으로 그의 위대한 북벌이 시작된다. 목표는 중원으로 가는 관문인 장안(長安), 오늘날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기억되는, 바로 중국 산시성의 대도시 시안의 옛이름이다.
실제로, 시안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그 장안인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두에서는 야간열차를 타고 최소 12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만큼 먼 곳이지만, 삼국지 기행을 하면서 시안을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장안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유명한 진시황의 병마용에 다녀온 것이지만, 사실 시안은 그 자체만으로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동서남북으로 위치한 성문과 둘레 12km가 완벽하게 보존된 성벽은, 그야 말로 기적이라고 밖에 부를수 없는 모습이었다.(전 세계적으로도, 실제 사람이 생활하는 도시에 고대 성벽이 완전하게 남아있는 곳은 몹시 드물다) 특히 가장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는 남문 안에서 성벽 바깥의 대형 유리빌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 든다. 정말이지 이곳이 중국이라는 사실만 빼면, 시안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도시였다.
밤의 시안은, 낮보다 세배 정도 더 아름답다. 종루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숨막힐듯 가득한 도로위의 차들도 전부 반짝이는 조명이 된다. 나는 아침부터 10시간을 넘게 걸어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던 그 순간에도, 찬 바람에 얼굴이 얼얼하게 시려올 때까지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오장원으로 가는 베이스캠프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시안에서의 일정이 너무 짧은 것이 화근이었다. 고작 제갈량의 사당 하나 때문에 어느 시골 촌구석에 있는 지도 모르는 오장원을 찾아가야 하나 싶었고, 촉이 그토록 장안을 원했던 이유가 이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정이 될 때까지도 성문 위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몰랐고, 남문의 매표소 앞은 그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성벽 위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 있었다. 소란스러운 것으로 보아 안쪽에서는 무언가 쇼가 벌어지는 중인듯 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 줄 끝에 서고 싶었지만, 지금 저 성벽 위에 올랐다간 두번 다시 내려 오지 못할 것 같아 연신 다리를 주무르면서 구부정한 자세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시안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도시는 아니다.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당나라의 수도였고, 무엇보다 촉에서 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관문이다. 지도를 보면, 그 위치의 중요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한중을 비롯한 촉은 죄다 산맥에 둘러쌓여 갇힌 형태고, 천수를 시작으로 장안을 통해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위는 한 없이 트여있다. 장안을 얻으면 서쪽의 천수는 막다른 길이 되어버려 자연스레 손에 들어오게 되고, 동시에 동쪽으로 가는 힘을 장안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다. 때문에 제갈량은 "장안을 얻으면 이미 위의 절반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 라고 했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던 당시 촉은 고작 익주 하나를 차지한 소국에 불과했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10개가 넘는 주를 차지하고 있던 위의 국력은 촉의 10배에 달했지만, 유비가 오를 공격한 것 처럼 아무 생각없이 일으킨 전쟁은 아니었다. 명분이 있는 싸움이었고, 제갈량 또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싸움이었다. 이제 그가 최후까지 전투를 벌였던 오장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