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샐러리맨의 우울 #9.
회사를 다니는 11년 동안 '이직'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직장 인치고 자기 회사에 불만 없는 사람이 과연 있겠냐만은 그들 대다수는 그런 불만을 겉으로 나타내기보다 참고, 또 참아 그렇게 자기 자리를 보존한다.
나 역시도 '이직'이라는 방법을 통해 평소 화(anger)와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상사에게 화끈하면서도 통쾌한 복수극을 꿈꾼 적이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을 확정 지어 놓고는 천년만년 자기 밑에 있을 것 같이 모질게 굴던 상사에게 무심한 듯 '툭' 사표를 던지는 모습.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 정리를 하고 부러움 가득한 동료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유유히 회사의 마지막을 빠져나오는 모습.
'이직'을 생각하는 직장인의 열 중 아홉은 자기 일에 대한 불만족과 인간관계의 위태로움, 그리고 회사 비전에 대한 불확실성 이 셋 중에 하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여전히 발붙이고 있다면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직' 사유의 정도가 회사를 떠날 만큼 과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채용 관련 정보를 찾다가 회사에 대한 평점과 리뷰를 보여주는 앱을 발견했다.
궁금한 마음에 재직 중인 회사명을 입력하고 검색해본 결과 기대보다 너무도 형편없는 점수에 문득,
'내가 이런 회사를 위해 그렇게 목을 매었었나?'
행여 놓치기라도 할까 봐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던 줄이 사실은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다.
10년 차 장기근속상을 받고 회사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스스로가 꽤나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서 평가하는 나란 인력의 가치는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백분의 일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과연 몇 점 짜리 직원일까?
현실은 냉혹하고, 그 앞에 선 자신은 초라하기만 하다.
어쩌면 나는...
보장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지금의 안정이 영원히 지속될 것인 양 스스로에 대한 믿음보다 회사라는 곳을 더 의지해 왔었던 건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회사의 영속성과 발전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커리어를 위해 조금 더 일찍 '이직'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실행에 옮겼어야 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살아남고 버티기 위해 애쓰기보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진짜 실력을 쌓고, 그렇게 쌓아 올린 가치로 회사 '안'이 아닌 '밖'을 염두하고 있었어야 했을지 모른다.
돈을 많이 벌고 남들이 다 아는 평점 5점짜리 회사에 다니는 것만이 성공이 아닌, 나만의 직업 지도를 만들어야 비로소 생존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공의 의미를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