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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AWRIKER Oct 26. 2020

이직은 하지 않지만 이력서는 씁니다

어느 샐러리맨의 우울 #5.

평소 가깝게 지내던 회사 선배가 "잠깐 커피나 한잔 할까?"라며 말을 건넨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는데...

"나 이직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그동안 정말 많이 고민했었어. 여러 가지 가정과 조건들을 대입해 보기도 했고 이 회사, 저 회사 지원해보기도 참 많이 해보고... 그런데 이직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더라."




최근 나는 사회생활 10년 차에 찾아온 뒤늦은 '어른이의 사춘기' 때문에 꽤나 고된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그동안 회사에 몸담아 오며 경력도 쌓이고, 나름 인정도 받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었다.


매일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 몇 년 뒤에도 딱히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바로 윗 상사들의 모습이 몇 년 뒤 내 모습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답답한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채용 관련 사이트를 찾아보면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조건에 맞는 일자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 뭘 했나...?'

이미 쓸모없는 퇴물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직을 고백(?)했던 선배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동안 한 회사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름의 해결책으로 이직을 결정했던 건데 막상 시장에 나란 존재를 내 보이고 나니 어느 누구도 관심 가져주질 않더라.

하지만 계속 준비하고 부딪혀보는 과정에서 잊고 있던 나란 존재의 가치를 하나씩 찾을 수 있었고, 무너져 있던 자존감도 어느새 다시 단단해져 있었어.

나는 네가 꼭 회사를 그만두지 않더라도 이직을 준비해 보았으면 해.

나에게 있어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은 '나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던 것처럼 너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자기 가치에 대한 감가상각이 다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無가치한 사람이 될 때까지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찾을 것인가?


이직은 주도적 행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섣불리 권하지도 않는다.

그 주도적인 행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나다움'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이직을 할 생각은 없지만 '이력서'라는 이름의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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