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랑이야.
부끄럽다.
《어른의 어휘 공부》 신효원 작가는 이렇게 썼다.
“부끄러움은 애석하게도 인간이 가진 망각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잊고 싶던 기억들은 무단히 내게 틈입해,
그때 그 초라했던 부끄러움을 생생하게 복원해 놓는다.
헝클어지지도 않고 도져버린 수치스러움은
다시금 나를 훑고 지나가며 기어이 무안을 주고서야 돌아서는 것이다.”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는 감정.
스스로를 혼내는 과거의 나.
그게 바로 부끄러움이다.
‘부끄럽다’를 표현하는 말들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있다.
무안하다 :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수줍거나 창피하다
낯부끄럽다 : 염치가 없어 얼굴을 보이기 어렵다
남부끄럽다 : 남 앞에 서기가 창피하고 민망하다
수치스럽다 : 매우 창피하고 부끄럽다
스스럽다 : 관계가 깊지 않아 조심스럽고 어색한 마음
열없다 : 겸연쩍고 부끄럽다
그중 스스럽다는 어딘가 가슴 설레고,
남부끄럽다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다.
부끄러움은 언제 찾아올까.
무언가를 틀렸을 때는,
주로 실망, 당황, 민망함, 억울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조금 다르다.
그 감정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
결국 ‘잘못’과 ‘타인’,
이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는 반드시 부끄러움 속에 들어 있다.
상대방이 잘못을 자각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에게나 유효하다.
반대로,
잘못했음을 모른다면 — 그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타인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 공감 부족인 셈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나 보다.
“공감은 지능이다.”
책장에 꽂혀 있던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의
제목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가급적이면,
부끄럽다는 감정을
무안하다거나 남부끄럽다는 식으로 느끼기보다는
스스럽다,
조심스럽지만 마음은 열려 있는 그런 감정으로 느끼고 싶다.
왜냐면...
결국엔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