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평평설

결국엔 사랑이야

by 살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독서 모임에서 특이한 제목의 책을 접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연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즐겁고 생산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이 책은, 과학과 철학을 연구해 온 저자가

2018년 ‘평평한 지구 국제학회(Flat Earth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직접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음모론자들과 마주하며,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책의 차례 앞에는 이 책의 본질을 압축한 두 개의 인용문이 있다.


"신념이 확고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마음을 닫아버리고,
사실과 증거를 들이대면 출처를 의심하며,
논리로 호소하면 논점을 오해한다."
— 레온 페스팅거, 《예언이 끝났을 때》
"그가 속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그를 속이는 일이 더 쉽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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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그들을 설득하려 애쓸수록 오히려 벽은 높아진다고.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거나, 과학적 근거를 내밀어도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방어심만 자극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중해 주는 것.

생각을 바꾸게 하려 하지 말고,
먼저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책은 백신을 거부하거나, 지구 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도
대개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두려움 속에서 방어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한다.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지만, 그것을 ‘무지’라고 몰아세우는 순간,
그들은 마음을 닫는다.


“넌 그것도 모르냐?”
그 말 하나가 모든 대화를 끝내버린다.

아무리 그 말이 ‘사실’일지라도,
사랑 없는 진실은 마음에 닿지 않는다.



제목 없음.png 최미나수 인스타그램 @minadori222

2022년, 세계 4대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 어스(Miss Earth)’에서

한국 대표 최미나수 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바꾸고 싶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바꾸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공감을 나누고 싶어요.
우리는 자주 공감과 친절을 혼동하지만,
공감은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든 어떤 문제든,
결국은 이해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대회용 대답이 아니었다.
사랑 없이 진실을 내민다고 해서,

마음에 닿는 건 아니라는 것.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녀가 그 자리에서 먼저 꺼내준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다.

우리 어머니와 신용카드 이야기.


카드 사태가 한창 뉴스에 오르내리던 시절,
우리 집에도 처음으로 신용카드가 생겼다.
어머니는 에버랜드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카드를 하나 만드셨다.


하지만 평소엔 현금만 쓰셨고,
그 카드는 보자기에 곱게 싸여 장롱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
어머니 마음속에는

‘카드는 곧 빚지고, 결국 망하게 된다’는 신념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실제로,

그 장롱을 열기 전 몇 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셨다.
그게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어머니가 살아온 세계에서 만들어진 신념의 흔적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엔 과학도 필요하고,
문명과 지식, 역사의 이해도 필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사랑이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
틀렸다고 단정 짓지 않고,
그의 두려움과 삶을 먼저 살펴보는 태도.


그 모든 게 바로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엔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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