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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윤 Sep 29. 2015

박氏연대기 10

제 2 부 타향

3. 이화장


그가 지배인의 소개를 받아 새로 간 곳은 문경 시내에 있는 이화장이라는 요릿집이었다. 중국집과는 다르게 기와와 단청으로 장식된 한식 건물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즐비한 고급 요정이었다. 그는 주인 마담에게 그곳에서 하는 일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오전에는 청소하고, 오후에는 시장 보는 일부터 아가씨들 잔심부름까지 온종일 뛰어다녀야 했다. 저녁이 되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는 술상 보는 일을 했다. 신선로를 시작으로 갖가지 음식들로 화려하게 차려진 술상은 그야말로 산해진미였다. 손님들이 몰려들고 술자리가 시작되면, 그는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주말이면 단체 손님들로 요정은 늘 붐볐다.


그는 그곳의 직책에 맞추어 하얀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처음에는 중학생 때 입었던 교복처럼 답답했지만 이내 적응되었다. 그에겐 본래 월급이 정해져 있었지만, 그건 형식적이었다. 실제로 그의 수입은 아가씨들이 손님에게서 받아 주는 팁이 대부분이었다. 술에 취한 손님들에게서 아가씨들은 쉽게 팁을 받아 그에게 쥐여 주었다.


그중에서 신양이라는 아가씨가 그를 유독 챙겨주었다. 다른 아가씨들이 까다롭게 굴거나 야단을 칠 때면 그녀가 대신 변명을 해주고 감싸주기도 했다.


“나한테 너만 한 동생이 있었거든?”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술에 취한 신양이 그에게 신세 한탄을 하면서 한 말이었다. 그녀의 동생은 몇 년 전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치료받을 돈이 없어서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그녀는 동생의 치료비를 벌어보겠다고 나왔다가, 몸은 다 망가지고 돈도 별로 벌지 못해 동생을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너도 정신 차리고 돈 좀 모으면 공부를 해. 이런 생활은 앞날이 없어.”


그녀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면서도 그 말을 몇 번 되풀이해서 그에게 했다. 그러나 그에겐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의 생활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학교생활보다는 훨씬 좋았다. 다시 공부하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화장이 있는 문경지역은 석탄광산으로 유명했다. 1970년대 산업의 발달로 석탄의 수요가 늘어나자, 문경에는 크고 작은 광산회사가 수십 개 생겼다. 그 작은 산골에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 정도로 흥청거렸다. 주말이면 오토바이를 탄 광부들이 2, 30명씩 단체로 관광을 다니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마을마다 식당이며 요정이 서너 개씩 있었지만 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이화장은 그런 문경 시내에서 제일 고급으로 치는 요정이었다. 시설은 물론이요, 요리사도 일류에다 기생들은 팔도에서 뽑아 온 미녀들로 가득했다. 세상사가 그렇듯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이었다. 요정마다 열댓 명에서 많게는 삼십여 명에 이르는 기생들이 모두 타지에서 이곳으로 돈을 벌기 위해 왔지만, 대개 포주의 꾐에 빠져 화장품이나 옷 살 돈, 혹은 집에 쌀 팔 돈, 몇 푼 빌려 쓰고 그 돈을 갚느라 이곳에서 웃음을 팔고 있는 처지였다.


그도 그녀들의 아픔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그녀들의 상처가 하나씩 드러나 보였다. 허구한 날 술을 마시다 보니 거의 위장병이 있었고 담배를 피워 기관지가 안 좋았다. 그래서인지 가장 많이 하는 심부름이 약과 담배 사다 주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고양이 쥐 잡듯이 그를 대하지만, 술이 한 잔 들어가고 옹크리고 있던 마음이 풀어지면 그녀들은 그를 붙잡고 신세타령을 해댔다. 어떤 기생은 그와 비슷한 나이도 있었다. 어떻게 속였는지 알 수 없지만 열일곱이라고 알려 준 그녀도 가난이 싫어서 집을 나왔다고 했다. 아기가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아기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언제나 아기에게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녀는 눈동자도 맑았다. 가족을 위해 나왔든 가족이 싫어 나왔든 서로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지자 그는 아가씨들을 따라 미장원이나 시장을 같이 돌아다녔다. 미장원 주인은 그의 머리를 뜨거운 고대기로 장난하듯 돌돌 말았다 폈다 하더니 단발머리 처녀처럼 만들어놨다. 그는 머쓱했지만 신양을 비롯한 아가씨들은 계집애처럼 예쁘다고 놀려댔다.


“박군아! 너 눈웃음 좀 치지 마라. 언니들 넘어가겠다.”


“맞아, 쟤 눈웃음 치면 다들 넘어가겠어.”


그곳에서 그는 그녀들의 머슴이기도 했고, 남동생이었으며, 친구이기도 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그의 골방에 누우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어떤 날은 그의 곁에 누워 자는 아가씨를 보고 기겁을 한 적도 많았다. 그런 일도 만성이 되자 그녀들이 하는 넋두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술 냄새가 풀풀 나는 그녀들일지라도 잠결에 그를 껴안을라 치면 그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는 원래 누나들 틈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자들에 대한 환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엄마를 제외하고는 처음 접해보는 보드라운 여자의 살결은 그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직 눈 뜨지 않았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그로 인해 강하게 자라났다. 언제부턴가 그런 일을 당하면 그의 하복부가 딱딱해졌다. 그는 그것을 들킬까 봐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잠을 자야 했다.


그러던 어느 추운 날, 신양이 병원에 실려 갔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심했는데 열까지 높아진 탓이었다. 그가 알기로 그녀는 빚은 이미 다 갚았고 얼마 정도의 돈을 저축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 더 모으면 고향인 원주에 가서 음악다방을 차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신양은 폐렴 진단을 받았다. 전염되지 않는 병이었지만 그녀는 더는 그곳에서 일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짐을 싸서 떠나는 날, 그는 그녀를 따라가고 싶을 만큼 아쉬움이 컸다. 마치 누나가 시집갈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리 잡히면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화장을 떠났다.


그녀들이 객지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의 경우였다. 하나는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병에 걸리는 경우였다.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병에라도 걸리게 되면 여지없이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화장이 있는 문경 지방은 탄광산업으로 흥청거리는 덕에 요정이 많이 생겼지만, 그곳으로 오는 아가씨들은 도시에서 주로 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생 자격증을 얻지 못했거나 나이가 들어서 밀려나 오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에서는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을 장려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속셈으로 기생들에게 ‘접객원 증명서’라는 기생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농촌의 처녀들이 너도나도 돈을 벌려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기생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호텔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은 물론이요, 통금에도 걸리지 않았다. 기생이 되면 많은 돈을 벌고 번듯하게 살 수 있다는 풍조가 만연해져 도시의 밤거리는 기생들로 넘쳐 났다.


하지만 그녀들이 온갖 수모를 겪어 가면서 번 돈은 여행사의 수수료나, 호텔통과세, 지배인 팁, 마담 사례비 등과 같은 갖가지 명목으로 빠져나가고 그녀들에게는 쥐꼬리만큼 돌아갔다. 일본의 졸부들은 한국의 기생들에게 몇 푼의 화대를 주면서도 온갖 추잡한 짓을 일삼았다. 그녀들은 일본 관광객의 눈에 들어 현지처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런 수모를 견뎌야만 했다. 현지처가 되면 월세든 전세든 집을 얻어주고 생활비까지 보내주기 때문에 그녀들로서는 최고의 호사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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