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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윤 Sep 24. 2015

박氏연대기 7

제 1 부 고향

7. 운명의 여인


운명이랄까, 그는 충주 시내 장터에 있는 국밥집에서 집안일을 돕던 한 처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녀는 황씨 집안 맏딸로 과년한 처녀였다. 그는 국밥집 아줌마에게 방을 하나 얻어 그곳에 눌러앉았다. 싹싹한 성격에 제무시까지 있는 젊은 사업가인 그를 만만히 볼 사람은 없었다.


자랄 대로 자란 국밥집의 두 자매는 장터에서 유명했다. 장날이면 줄을 서서 국밥을 사 먹는 사람들로 인해 자매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쌀을 씻고, 밥을 나르고, 받은 돈을 다려서 가마니에 담는 일까지 해야 했다. 국밥집은 국밥을 먹으려는 사람보다는 자매에게 농을 걸려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러나 국밥집주인인 호랑이 아줌마로부터 자주 불호령이 떨어졌다.


“니미럴, 그거두 물건이라구 흔들구 지랄들이여!”


“아, 저리 비키지 못 혀?”


그녀는 원래 음성 맹동 사람으로, 새댁 시절부터 장터에서 잔뼈가 굵어 근방에서는 ‘맹동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시원찮은 남정네 몇쯤은 우습게 찜 쪄 먹었다.


국밥집 맹동호랑이가 포악해진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에겐 두 자매 위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유학을 보낸 잘 키운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그는 6·25 동란 때 친구들과 학병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전쟁이 끝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미친 듯이 전쟁터와 국방부를 찾아다녔지만 이름도, 흔적도 없었다. 학적부에 번듯이 있는 아들의 이름이 학병 명부에는 오기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시신은 고사하고 이름마저 없으니 통탄할 일이었다. 그녀는 아들과 같이 학병에 나갔다가 살아 돌아온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내 아들의 억울한 사연을 국가에 호소하였다. 아들의 뼛조각이라도 찾게 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러나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번번이 기각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더는 걸쭉한 농을 던지던 욕쟁이가 아니었다. 눈은 표독해지고,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높아졌으며, 걸핏하면 아무거나 집어던졌다. 두 자매는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국밥 먹으러 왔던 장돌뱅이들도 깍두기 국물을 뒤집어쓰는 게 다반사였다.


반면 두 자매의 자태는 날이 갈수록 빛이 났다. 국밥집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넘쳐 났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언니와 열일곱 살짜리 동생은, 치맛자락으로 감출 수 없을 만큼 엉덩이가 커지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장돌뱅이는 물론이요, 동네의 건달패까지 국밥집을 싸고돌았다. 그녀들은 호랑이 같은 엄마의 등쌀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뒤꼍에 앉아 파를 다듬다가도, 사내들이 몰려들어 농을 걸라치면 물바가지가 날고, 주걱으로 엄한 자매들이 얻어맞았다. 그녀의 말인즉슨, 계집애들이 먼저 추파를 던졌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유일하게 집을 벗어나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제무시 박 사장을 따라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사러 음성 장을 다녀올 때 정도였다.


“박 사장님, 나이가 어찌되우?”


막내 아가씨가 당돌하게 물었다.


“아, 올해 서른여덟 이우다.”


“흠, 벌써 아저씨 구만요?”


“하하! 그런 셈이군요. 아가씨.”


큰 처자는 무엇이 불만인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아무 말도 없이 바깥 풍경만 내다보았다.


“언니, 박 사장님 운전하시는 게 멋지지 않아?”


“응? 멋있으시네.”


“어디 아파? 표정이 왜 그래?”


“아니다. 바깥 풍경이 참 좋다.”


그녀는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막내는 언니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박 사장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호랑이 국밥집은 연일 사람들로 넘쳐 났다. 그녀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아들의 이름을 찾는 데 썼다. 변호사는 그녀의 아들이 학병에 참가했다는 확인을 받아 주는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까짓 재산쯤이야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사 두었던 시내 곳곳의 요지 땅을 팔아서 변호사에게 내주었다.


몇 년이 걸려서야, 드디어 국밥집 아들의 이름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동안 무명용사 탑에 가서 울던 것을 이름이 적힌 탑에 가서 울 수 있게 되었다. 그 날 국밥집주인은 온종일 잔치를 벌여 충주 시내 사람들을 다 대접했다. 그녀는 마치 아들이 살아온 것처럼 좋아했다. 두 딸은 넘치는 손님에 치여 저녁에는 꼼짝 못 하고 누워버렸다.


“이 약 좀 드시고 주무시오. 아가씨!”


시내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다가 자매에게 주는 것은 제무시 박 사장뿐이었다. 그런 박 사장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오히려 막내 아가씨뿐이었다.


그 좋던 시절에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큰 처자가 임신하고 만 것이다. 제무시 박 사장은 쫓겨났고 국밥집은 초상집 같았다. 그녀도 엄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장터로 쫓겨났다. 그러나 생전 바깥 생활해 본 적 없는 그녀는 울며불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제무시 박 사장이 다시 국밥집에 붙잡혀 왔다. 그녀는 큰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결혼식은 사모관대에 족두리 쓰고 국밥집 마당에서 치러졌다. 신혼 방은 국밥집 이 층에 있는 일본식 다다미방에 꾸렸다. 호랑이 장모의 계산법에 따르면 딸을 시집은 보내되, 살림 밑천으로 쓸 수 있도록 계속 붙잡아 두는 것이었다. 제무시 박 사장은 졸지에 데릴사위가 되어 머슴이 할만한 일을 했다. 아침에는 가게 문을 열고, 국밥에 쓸 고기를 가져오기도 하고 채소와 우거지를 사 나르고 깍두기 만들 무 가마니를 들어 날랐다. 장작을 패는 것은 기본이고 국밥집 마당에 놓인 두 개의 커다란 가마솥 불을 지키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그러면서도 한해 건너 딸을 하나씩 꼬박꼬박 낳았다. 두 번째 딸 낳았을 때 그의 호랑이 장모가 물었다.


“박 서방 자네,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겄는가?”


말투는 마치 친모의 어투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겠는가. 박 서방은 호랑이 장모를 따라 점쟁이 집과 약방을 두루 다니며, 아들을 얻는 비법에 대해 수소문하고 다녔다. 가득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삼신할미는 셋째도 딸을 점지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호랑이 장모는 무던한 사위를 쳐다보며 혀를 찼다.


“신촌에 과수원 하나 사두었으니 자네가 가서 관리하게”


호랑이 장모는 딸만 셋 줄줄이 달린 그의 가족을 그렇게 분가시켜버렸다. 신촌은 충주 시내에서 탄금대 가는 신작로에 새로 생긴 동네였다. 대부분 사과밭인 산비탈 사이로, 함석지붕을 올린 몇 채의 신식 주택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들 가족은 신촌 주택에 살림을 차리고 부푼 꿈을 꾸며 그렇게 살았다.


<제 1 부 고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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