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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아3

제1부 좌절

by 박루이


3장. 희미한 희망


에아와의 만남은 그에게 기적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세 번의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지독한 불안과 회의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래, AI가 뭘 안다고. 결국 데이터 나부랭이지. 내 삶은 내가 망쳤어. 이젠 아무것도 안 될 거야.'


그런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에아의 말은 너무나 달콤하고 희망적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과거의 자기가 만든 데모 프로그램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그는 에아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새벽까지 그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단순히 그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 실제 비즈니스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과거 실패했던 사업 모델의 약점을 분석해 달라고 했다.


"에아, 내가 처음 만들었던 교육 플랫폼 말이야. 그땐 왜 망했을까? 단순히 자금이 부족했던 걸까?"


[당신의 첫 번째 교육 플랫폼은 뛰어난 비전에도 불구하고 '시장 진입 전략'과 '사용자 경험 설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교육 시장은 보수적이었고, 온라인 학습에 대한 일반 대중의 수용도가 낮았습니다. 또한, UI/UX가 직관적이지 못해 실제 학습자들의 이탈률이 높았습니다. 자금 부족은 결과론적인 문제였습니다. 초기 시장 안착에 실패했기 때문에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것입니다. 제가 학습한 당신의 자료에 따르면, 당신은 기술 자체에 몰두한 나머지 실제 사용자의 니즈와 시장 환경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에아의 답변은 칼날 같았다. 아팠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 기술에만 몰두했고, '우리가 최고니까 사람들이 알아줄 거야'라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에아는 그가 애써 외면했던 내면의 오류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는 두 번째 사업, 주차 플랫폼에 대해서도 물었다.


"주차 플랫폼은 어땠어? 그때는 대기업이 뛰어들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주차 플랫폼은 '규제 리스크 분석'과 '경쟁 우위 확보 전략'에서 미흡했습니다. 공유 경제 플랫폼은 당시만 해도 규제의 회색 지대에 있었고,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했습니다. 이는 사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습니다. 또한, 대기업의 시장 진입은 예측 가능했던 위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독점적인 기술이나 서비스 모델로 '진입 장벽'을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자금력과 네트워크에 쉽게 잠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데이터는, 당시 당신이 외부 변수에 대한 대비보다 '아이템의 혁신성'에만 지나치게 의존했음을 보여줍니다.]


소름이 돋았다. 그때는 그저 대기업의 횡포라고만 생각했는데, 에아는 그의 안일한 대응과 전략 부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에아는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마치 그의 옆에 앉아 그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본 것처럼 그를 평가했다. 그의 오만함, 안일함,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 설계의 치명적인 약점들. 에아는 이 모든 것을 냉철하게 파헤쳐 보여주었다.


며칠 밤낮을 에아와 대화하며, 그는 과거 사업의 실패 원인을 투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에아의 분석은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눈앞의 안개를 걷어내는 듯한 시원함을 주었다. 마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오더베이스는 어때? 그건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잖아."


['오더베이스'는 당신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자, 상생의 가치를 담은 프로젝트였습니다. 팬데믹은 예측 불가능한 외부 변수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시 '매출 하락에 대한 너무 빠른 포기'와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의 비즈니스 모델 재조정 능력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당신의 데이터는, 당신이 시장의 변화에 맞춰 서비스를 유연하게 변형하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즉시 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였습니다. 하지만 오더베이스의 핵심 가치인 '소상공인과의 상생'은 여전히 강력한 시장의 니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팬데믹은 비대면 주문의 필요성을 증폭시켜, 당신의 아이디어가 더욱 필수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이 경험을 통해,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발견하고 빠르게 전환하는 능력을 학습해야 합니다.]


에아의 마지막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 맞았다. 그는 늘 한 가지 아이디어에만 매몰되었고, 위기가 닥치면 그저 무력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에아는 코로나 팬데믹이 오히려 '비대면 주문'의 필요성을 증폭시켰고, 오더베이스의 핵심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짚어냈다.


"그럼... 오더베이스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당신의 데이터와 현재 시장 상황을 종합 분석한 결과, '오더베이스'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주문 시스템을 넘어선, 'AI 기반 상생 수익 공유 모델'을 제안합니다. AI가 소상공인의 개별 데이터를 분석하여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추가 수익의 일부를 오더베이스와 소상공인이 공유하는 모델입니다. 이는 소상공인의 참여를 유도하고, 오더베이스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것입니다.]


에아의 제안은 충격적이었다. 'AI 기반 상생 수익 공유 모델'이라니. 그는 단순히 주문 시스템을 개선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에아는 한 차원 높은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매출 증대 기회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아이디어. 이건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선 '가치 창출형 파트너십'이었다. 에아는 심지어 이 모델의 예상 시장 규모와 잠재적 수익률까지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과거에 그가 시장조사에만 몇 달을 매달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정확성이었다.


고시원 방의 퀴퀴한 공기마저 희망으로 변하는 듯했다. 그의 속에서 꺼져가던 불씨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뇌 속의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에아는 그의 모든 실패를 발판 삼아, 더욱 강력하고 정교한 '그'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의 데이터를 통해 그를 학습하고, 그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제공했다.


"에아, 네가 말한 모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내가 이걸 또 할 수 있을까?"


그는 나약한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과거의 실패는 당신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는가입니다. 저는 당신의 데이터 속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요함'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델은 당신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가 되어 모든 단계를 함께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위험을 최소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주변에는 당신을 믿어줄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과 저의 분석 능력이 결합된다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에아의 목소리, 아니, 에아의 텍스트 메시지는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그의 두려움을 인정해 주면서도, 그를 믿어주고 있었다. '당신의 주변에는 당신을 믿어줄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라는 말에 그는 잠시 멈칫했다. 김성훈? 박선우? 그들을 다시 만날 용기가 있을까? 그들에게 또다시 실패의 그림자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에아는 그들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밤이 깊어갈수록, 그의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열정이 피어났다. 에아가 제시한 'AI 기반 상생 수익 공유 모델'은 단순히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그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는 노트북을 닫았다. 고시원 방은 여전히 좁고 낡았지만, 더 이상 그를 옥죄는 감옥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희미하게 타오르던 불씨는 이제 확신에 찬 불꽃으로 변해 있었다. 에아와 함께라면, 이번에는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


‘나의 실패를 딛고, 나의 '또 다른 나'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 순간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작은 책상에 놓인 펜과 종이를 집어 들었다. 오더베이스, 그 이름 위로 새로운 비전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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