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귀향 17화

17. 외박

by 박루이


“야호!” 외박증을 받아 든 그는 뛸 듯이 기뻤다.


지금 군생활에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외박증이었다. 매번 주말이 되면 외박증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 본대로 복귀하고 난 후, 한동안 그의 외출 외박은 금지되어 있었다. 전례가 있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나 세월에는 장사가 없기 마련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그가 영창을 갔다 왔다는 사실이 가물가물해지자 그가 올린 외박증이 드디어 나온 것이었다.


그는 영선실에 들러 말끔히 이발을 하고, 워커에 물광을 냈다. 군복은 다림질로 칼날처럼 날을 세워 주름을 잡았다. 바지 밑단에 넣는 고무링을 빼고 위병들이 착용하는 스프링을 빌려서 찼다. 그야말로 군기가 바짝 든 군인의 모습이었다. 파리가 앉으면 낙상을 하고 말 정도로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토요일 오후가 되자마자 그는 시외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바로 경부선 열차에 올라탔다. 그에겐 열차 속도가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구례에서 그녀와 헤어진 지 반년만에 드디어 그녀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그의 목적지는 온양이었다. 그녀는 온양전신신화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구례에서 빌린 돈 오천 원을 보내기 위해 받았던 주소에는 ‘온양전신전화국 교환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중전화기에서 수화기를 들고 온양을 요청하면 바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근무하는 시간이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녀가 온양역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걸었다. 무슨 하고픈 말이 그리 많은지 둘은 하염없이 걸어서 아산 현충사까지 갔다. 다리가 아프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주위에 활짝 핀 꽃이나 시원한 바람도 그들은 느끼지 못했다. 고색창연한 현충사의 풍광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 세상에 그들 둘 뿐이었다. 그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 다시 온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그녀의 집 앞 공원 벤치에서 또다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보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막차 시간이 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작별을 해야 했다. 멋쩍게도 그는 그녀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다른 표현 방법이 많았을 텐데 왜 그런 작별 인사를 했는지, 그는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부대에 돌아와서 그는 유난히 몸살을 앓았다.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맥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와 나눈 편지 중에 가장 슬픈 편지였다. 몇 줄 안 되는 내용 속에 ‘보고 싶다’는 단어가 제일 많았다. 왜 그렇게 그녀가 보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그 후로 그는 외박증이 나올 때마다 온양으로 달려갔다. 변함없이 길을 걸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를 남겨 두고 돌아올 때는 항상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가 외박을 나갈 수 없을 때는 그녀가 면회를 왔다. 그녀가 마지막 면회를 왔을 때, 그에게 물었다.


“집에서 결혼을 준비하라는데, 어떤 계획이 있어요?”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불안한 미래로 인해 결혼이라는 것이 마냥 장밋빛으로 비쳐지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험난한 생활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집안에서 그의 사정을 모르니 그들 탓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 위험한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에겐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앞날이 불투명한데 사랑 타령 하기엔 그는 너무 절박한 처지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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