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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Apr 19. 2018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2017)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2017)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목숨을 잃은 어린 중학생 동호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빛 고을 '광주(光州)'는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되고 ‘가족’은 ‘유족’이 되었다. 군인에 의해 난도질을 당한 자식, 남편, 형제의 시구를 알아볼 수 있도록 순번을 매기고 무명천을 덮어주는 일을 돕던 동호. 그의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서다. 시위 중 손을 놓친 친구, 정대를 위해.


 정대는 이미 군인에 의해 살해당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어떻게 특정 마을을 고립시켜 ‘극렬분자’로 몰아세운 후, 함부로 훼손하고 죽일 수 있을까?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섭다고요.”(p.29) 어린 중학생 동호는 자신도 크면 군인을 거친다는 사실을 몰라서 저렇게 의연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국가는 살인자다. 군대는 마을과 삶을 파괴한 최신 무기다. 이율배반을 안고 사는 그들이 이 나라에 등을 진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당하지 않고 그들은 당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은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 한강은 광주에서 10년을 살다 서울로 이사했다. 친척이 누군가를 조문하러 고향으로 갔다가 구해온 사진첩을 몰래 훔쳐본 것이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졌다.”(p.199)


 실존 인물인 동호의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 그의 형을 찾아 소설로 쓰겠다는 허락을 받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은 학살과 고문 등을 자료와 그들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엮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p.211) “가슴에 대검을 박아 넣은”채 살아가는 그의 모습과 작가의 모습이 아련하게 겹친다. 그녀의 노력은 표지에 실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소설을 통해 본 참혹하고 잔인한 ‘그 날’의 ‘민낯’은 동전과도 같은 인간의 양면성이다. ‘인간’은 ‘가해자’가 되어 잔인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당하는 것”(p.134)이 될 수 있다. 살해자는 ‘국가’인데 추도식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로 관을 감싸다니. 총과 맨주먹의 싸움. 처음부터 승자가 정해진 국가의 비겁함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5·18에 대한 경험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잔인함’보다 ‘인간애’에 주목한 점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느꼈는데,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런 기우를 말끔히 없앤다. 오히려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 ‘개인’보다 ‘집단’의 강요, ‘공포’에 의한 통치, ‘인간애’ 보다는 ‘국가관’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그림자를 통해 ‘인간’을 통찰한다.

 

『소년이 온다』는 5·18을 기억하는 이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이에게, 알지만 관심 없던 이에게 ‘그 날’ 죽은 소년의 혼(魂)이 말을 거는 거다. ‘잊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능동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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