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리고 살리고 Oct 04. 2018

가슴이 뻥 뚫린다. 사이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사계절, 2017)

불과 몇 년 전, 유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인문학이 ‘열풍’과 합쳐진 때가 있었다. 그 대세에 힘입어 지난해 JTBC에서 〈말하는 대로〉란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 연예인이나 저명인사가 길거리에서 시민을 호객해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하는 거다. 이런 바람은 지나가기 마련. 아쉽게도 21회로 종영되었지만 빠짐없이 시청했던 열혈 시청자로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젊은 사회학자, 오찬호가 출연했을 때다. 진행자는 사회 부조리함에 대한 공부를 하면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공부가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저는 제 탓을 하지 않죠. 그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이에요.” 직업상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문제는 자기 탓이 아닌 사회 탓을 할 수 있으므로 자신은 굉장히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한마디로 사회학은 비관도 염세도 아닌 긍정과 호감의 학문이 되었다.


 멀게만 느꼈던 사회학이란 학문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있다. 2013년에 초판을 찍고 벌써 9쇄니 입소문이 꽤 난 모양이다. 사회 부조리를 속 시원히 드러내면서 내 삶과 연결 짓도록 돕는 책. 노명우의 『세상 물정의 사회학』(사계절, 2017)이다.


 ‘탓’을 ‘책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흔히 ‘네 탓’ 이란 말에는 ‘네가 책임져!’가 뒤따른다. 사회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로 개인의 삶이 망가진다면 사회가 응당 책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공감이 우선이다. 그 힘이 모여 연대를 이루어야 개선의 여지가 있다. '탓'을 달리 보면 '책임'과 상통하듯 개인과 사회도 공감이 촉매가 되어 끊임없이 연결된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은 사회학과 삶의 느낌의 조우이지만 그 둘은 만났을 때 힐링이라는 값싼 동정과도 신세한탄이라는 투덜거림과도 좋은 삶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시니컬한 태도와도 다르다. 비판이란 본래 투덜대지 않으면서도 세상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p,21) 


 성숙한 비판 능력은 끈질긴 사유에서 출발한다. 소비주의 시대에 우리는 “사치품 소비는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p.35)를 갖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신용카드 빚더미에 시달리면서도 쇼핑 중독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대하며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치를 일삼는 ‘된장녀’가 문제라고”(p.36) 판단한다. ‘된장녀’를 희생양으로 삼는 순간 이른바 ‘럭셔리 열풍’은 사회의 한 부분인 여성만의 문제로 한정되고 소비는 그들만의 문제가 된다. 반지하에 살면서 골프를 즐기고 밤마다 21년 산 위스키와 맥주의 폭탄주를 즐기는 남자는 숨기고 있는 것이다. 정작 남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럭셔리 열풍”(p.36)의 실체는 보지 못한다.


 이 책은 사유하지 않는 삶에 대해 묻는다. 왜 우리는 부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만 관심을 두고 그들의 불법 상속에는 무관심한 걸까. 다른 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멀리 해외까지 가서 정작 익숙한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역사의 주인공은 승리자만 가능할까. 인간의 수치심을 이용해서 발전했다는 문명화는 어떻게 이룩된 것인가. 덴마크와 스웨덴의 국민들은 특정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복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까지는 ‘원래 그러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문제들이다. 이러한 질문과 사유의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사회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존재가 될 뿐이다.


 저자의 냉철한 시각과 그에 따른 처방전은 우리에게 사회문제를 바라보는데 도움을 준다. 개인과 사회의 접점을 찾기 위해 스스로 중재자를 자처한 저자는 “위안을 주는 따뜻한 언어만을 일삼지 않는다.”(p.235) 오히려 ‘콜드 팩트(Cold Fact)’라는 냉정한 자극을 준다. TV를 껴안은 채 언론의 말을 믿고, 프랜차이즈 음식을 먹으며, 자본주의라는 종교 아래 연예인이 보여주는 옷을 사고, 남이 하는 취미를 따라 하며 공허한 자신을 바라보는 삶이 과연 좋은 삶인지 돌아보고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특히 압권은 저자의 ‘사이다’ 같은 표현이다. 목숨을 걸고 자기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한 용산참사 희생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개”(p.212)                                                     


 사회문제 해결은 우리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치유란 한쪽의 변화만으로 얻을 수 있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살벌한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시작이다. 마음이 묵직해지지만 우리에겐 쓸쓸한 가을밤을 달래줄 소주가 있으니, 대면할 용기를 주는 이 책을 안주로 권한다. 팩트와 논리에 근거해 씹을만한 안주거리가 아주 풍성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먼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