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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Dec 18. 2018

샤넬에서 에코백

편견

                                          

몇 년 전, '박승숙 미술치료 연구소'의 이론 수업을 들었다. 귀한 토요일 오후를 2년이나 바쳤으니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새삼 돌아본다. 3살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니 토요일은 귀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생활이 힘이 들어 생명보험을 넣는다는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양해를 구한 후 수업을 들었다. 

이걸 통해 두 번째 잡을 갖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했는데 수업을 들을수록 난생처음 '나'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는 거에 빠져들었다. 난 다른 사람의 마음은커녕 '나'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까막눈, 장님이었다.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이미지를 나로 여기며 내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만 선별하는 게 이미 내 모든 행동 패턴에 내면화돼있었던 것이다. 나를 깨치는 과정은 매 수업마다 쇼킹해서 온전히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데도 이론 수업을 끝낸 후 2~3년 더 걸렸다. 지금도 가끔 수업 때 겪었던 경험이나 깨달음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평생 그 과정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단 두려움이 든다. (그러나 예전처럼 어려운 일을 보는 즉시 우회하거나 피해 가는 패턴은 적어졌다......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남편은 그런 나의 패턴을 참 얄밉게 잘도 지적한다.)

첫 수업시간의 일이다. 스케치북을 반을 나눠 위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훌륭한, 의미 있는, 멋있는, 가치 있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아래에는 나쁘다고 여기는, 혐오하는, 싫어하는, 짜증 나는 이미지의 사진을 잡지에서 오려 콜라주를 해가는 거였다. 상단에 '샤넬'로고를 대문짝만 하게 붙였다. 그리고 여러 명의 잘생긴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아이돌 그룹의 예쁘고 날씬한 여성의 사진을 붙였다. 아래에는 담배사진, 노숙자 사진을 붙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를 단번에 보여주는 신박한 숙제임이 틀림없었다.

"샤넬은 제가 꼭 한번 갖고 싶은 브랜드예요. 지금은 뤼이 비 똥, 구찌, 페라가모...? 샤넬보다 낮은 급밖에 없거든요. 샤넬은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지만 그걸 갖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남자들에게 둘러 쌓인 이 분, 세상 제일 부러워요. 저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가장 싫어하는 거요?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요. 담배연기가 너무 싫어요. 왜 남에게 피해를 주죠? 그리고 전 가난이 싫어요. 그래서 거리에 더럽고 냄새가 날 것 같은 몰골을 한 노숙자들이 무섭고 싫어요. 그냥 피해버리는 거 중 하나예요."

와, 대박! 지금 써놓고 보니 참 재수 없다. 돈을 기준으로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으로 나눈 것이 내가 만들어 살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은 삶에서 정말 가치 있는 이미지를 잘도 찾았다. 평소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사진을 붙이거나, 심지어는 '나무' 사진을 붙여 은유를 적용할 줄도 알았다. 어떤 이는 싫어하는 이미지로 'TV조선' 로고를 붙인, 나에 비해 사회적으로 매우 진보된 인물도 있었다. 수업이 끝난 직후 난 내 발표가 얼마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지에만 집중했다. "현주 씨! 용기 있어요.", "돈? 중요하죠. 저도 그 부분에 공감해요.", "저렇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게 자극이 됩니다." 그런 피드백에 신이 나서 숙제를 잘해갔다는 결론을 내리고 흡족해했다. 돌이켜보니, 저 수준의 발표에다 대고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제된 표현이지 싶다. 그 시간, 나를 보는 것은 대실패, 폭망이었다.

지금은? 샤넬? 갖고 싶지 않다. 그 돈이면 여행을 가거나, 그런 명품에 쓰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 집이나 상가를 사고 싶으니 나의 소유 욕구는 종목만 달라졌을 뿐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조금은 달라진 부분이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않는다는 점. 그땐 참 남을 의식하며 살았고, 의식하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다. 샤넬도 그 가방의 철학과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남에게 보이고 싶어서 갖고 싶었던 거다. 지금은 가볍고 편한 에코백을 든다. 그리고 읽든 안 읽든 항상 책이 들어있다.

수업시간에 실패한 나를 들여보는 작업은 정작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있었다. 가방을 챙기고 나오는데 건물 밖에서 존경하는 나의 우상! 박승숙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너무 부끄러웠다. 발표 시간에 선생님 면전에다 "나, 담배 피우는 사람 질색해! 나, 너, 싫어!"라고 말한 셈 아닌가. '담배 피우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란 등식은 어쩌다 만들어낸 것인가? 이 단순함과 무식함을 어쩐단 말인가? 내가 선을 긋고 있는 너머의 것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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