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리고 살리고 Dec 20. 2018

샤넬이나 책이나

편견

                                                                                                                                                                            내 동생은 명품을 사랑한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샤넬을 몇 개씩 들고 다니고 심지어는 신는 것도 여러 개다. 사치가 심하다고 늘 못마땅했다. 한심함 사이에 부러움도 엉겨있어 기분에 따라 잔소리가 또는 대놓고 "나도 갖고 싶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동생은 
괌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명품관에 들러 구찌 가방을 샀다. 관세 포함 금액을 인터넷으로 한국 가격과 비교하는 걸 보니 한 두 번 사본 경력이 아니다.

난 관세율도 모르는데, 쩝.

쓸데없이 가방에 돈 쓴다는 생각이 들지만 제부가 좋은 맘으로 사주는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안 예쁘다고 해버렸다. 아예 얼려버린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제부에게 "오빤 참 맘도 좋아요, 어쩜 이렇게 비싼 걸 고민 없이 잘 사줘요?"라고 물었다. "지금까지 손해를 너무 많이 보고 살아서 이런 데 돈 쓰는 건 기쁜 일이야."

아름다워라. 제부는 동아리 선배였다. 남편이 오작교가 되어 결혼했다. 제부가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안다. 제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그렇지만 내 동생은 고마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애 낳느라 고생도 좀 해보고 밤새 기저귀도 갈아재끼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아픈 허리 꺾어가며 젖도 물려보고 아픈 아이 업어 응급실에 가 맘도 졸여보고 해야 철이 좀 들까. 꼴랑 구찌란다. 

시간이 지나 말했다. 사준 사람 기분 나쁘게 그런 표현은 못쓴다 했더니 그게 겸손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헐, 뭐가 겸손이야!!!!!!

에효, 십여 년 전 내 모습이려니 하고 참는다. 동생도 자신의 부족함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추측한다. 어디까지나 나에 비춰본 추측이다. 요즘은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해대니 인터넷으로 옷도 사 입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우쭈쭈, 아이고, 짠해라!

동생이 허영이 심하다는 판단 후, 허영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책 읽고 서평 쓰는 이유도 허영에서 출발한다. 지적이고 싶고 똑똑하고 싶다. 내가 가진 언어가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 글도 말도 적확한 표현을 적재적소에 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싶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채우기 위해 책을 다 읽지도 못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게 내 공부가 숨기고 있는 허영이다. 동생에겐 샤넬, 나에겐 책이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다면 그걸로 됐다. 샤넬이나 책이나 한 끗이다. 가격차는 '후덜덜'이나 가격 비교 자체가 자본주의적 사고다. 허영은 허영일뿐 환산하지 말자.

동생이 사랑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걸로. 쓰다 버릴 것 같으면 나 달라고. 옆에서 콩고물이나 잘 주우며 살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이전글 샤넬에서 에코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